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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스럽게 Oct 22. 2021

경제 자립을 꿈꾸는 범띠 아줌마

치사빤스인 남편, 그래도 고마워

© nadiavalko, 출처 Unsplash


꽃띠, 꽃중년 나를 뜨겁게 응원한다


며칠 전, 굵은 S컬 파마를 했다. 오전 예약 시간 맞춰 찾아간 미용실에서 가운을 입고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풀린 듯 지저분해 보이는 내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파마 상태를 보며 몇 마디 건네던 헤어디자이너가 열펌 결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전날 확인한 펌 요금보다 7만 원가량 훌쩍 오른 가격이다.  예상치 못했다. 기존 열펌 비용도 저렴하지 않은데 컷팅 비 추가에 매직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기존 비용이 다 포함된 게 아닌가를 다시 물었다. 부원장이라는 젊은 헤어디자이너는 체인이라 정해진 룰대로 추가 비용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헤어디자이너는 당당했다.


난 그동안 보다 저렴한 동네 헤어숍을 찾아다녔다. 동네 엄마들에게 소개받은 곳이나 맘 카페에서 호평받은 곳으로 여기저기 들러보았지만  맘에 맞는 곳을 아직까지 찾지 못한 게 미용실이다. 헤어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아도 어느 정도 포기한 채 동네 미용실 찾아 헤매 다녔다. 편한 옷 걸쳐 입고 노 메이크업에 부스스한 머리로 그렇게 찾아간 곳은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둔 체인 미용실이었다. 내가 결제 비용으로 가져간 것은 남편이 건네준 신용카드다. 추가 비용 견적에 나는 '보고'라도 하듯 남편에게 톡을 전했다. 파마요금을 더 내야겠다는 톡을 확인한 남편의 두 마디 회답. "음냐."


우리 집은 내가 남편에게 용돈을 받아쓴다. 첨에는 나에게 용돈을 타다 쓰던 남편이었다. 그랬다가 내가 너무 '돈에 그저 맹구'라서 남편이 안 되겠다고 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피곤해하는 내색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도 남편에게 용돈을 타다 쓴다. 돈 관리가 귀찮아서 남편에게 도로 맡긴 건  나였다. 적지 않은 용돈을 받는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액수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용돈 받아쓰는 처지에 그렇지 않아도 저렴하지 않은 파마 비용인생각지 못한 7만 원가량의 추가된 결제비 설명을 들으니 살짝 열이 올랐다. 화를 낸 건 아니었지만 무표정으로 웃지 않았다. 100% 수긍하지 못했다. 그 헤어디자이너는 맘에 안 들면  그냥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잠시 주저하던 나는 '그냥 할게요.'라고 대응했다. 상한 머리끝을 커팅하고 샴푸실에서 머리를 감는 중에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추가 비용을 캐묻던 내가 꼰대처럼 보였을까? 너무 궁상맞았나? 촌 아줌마 티를 낸 건가? "보통 얼마 주고 파마를 하셨어요?"라고 묻던 헤어디자이너가 얄궂기도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의 유난히 우아하고 지적인 목소리에 기가 꺾였다. 그 미용실이 익숙한 듯, 대접받는 사모님처럼 느껴지는 그 고객과 비교가 됐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라떼는 말이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7년 방송일을 했다. 갓 졸업한 뒤 스물두 살부터 일을 시작했다. TV 일을 먼저 시작했으니 헤어와 의상 협찬, 메이크업을 보조받기도 했다. 바쁜 날에는 아침 생방송 정보를 전하고, 스텝들과 취재를 바로 나가야 하는 꽉 찬 스케줄에 바삐 움직였다. 저녁에 돌아와서는 보도국 뉴스 기상 캐스터로 일정들을 소화해내느라 긴장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헤어 협찬도 컨셉에 맞게 하루에만 세 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스타일 관리에 나름 철저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 현실은 '여자에서 엄마의 일상'을 지나며 꾸미기에 많이 무디어졌다. 그저 경기도권에 사는 몸뻬 비슷한 차림의 '털털'을 가장한 아줌마가 되었다. 구두 대신 운동화가 편해졌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다가도 속마음 한편이 싸했다. 추가된 헤어 비용에 당황하며 재차 캐묻던 '꼰대 아줌마'같았던 나의 모습. '이게 뭐라고?' 미용실 안에서 소심해진 나를 마주했다.


기분 좋은 아로마 오일 서비스와 고급스러운 샴푸 향에 맘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매직 펌으 지저분하기만 하던 잔펌이 정리가 되었다. 원하던 굵은 펌을 제대로 해주고자 노력하는 듯한 손놀림이 느껴졌다. 이들도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정진하며 노력했겠는가? 내가 먼저 젊은 부원장 헤어디자이너에게 말을 건넸다. "저렴한 동네 미용실만 찾아다닌 지 오래됐어요. 이해해 줘요. 역시 다르네. 머리 스타일을 잘 잡아주시네요." 애써 미소 띠며 칭찬을 건넸다. 그녀도 좀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러실 수 있겠다'며 헤아렸단다. 전 날 헤어 비용을 확인하고 갔기에 '추가 비용 얘기에 당황하셨을 것 같다'라고 했다. 서로 멋쩍게 웃었다. 헤어디자이너는 '머리 스타일 내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는 '또 올게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마음먹으면 청담동 헤어숍에 건너가 비싼 헤어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 손은 떨리겠지만. 가정 내 '수입과 지출의 시소오'를 타는 중에 균형을 맞추느라 허리띠 졸라매며 나름 애쓰고 있다. 돈 쓰는데 쫄아든 마음, 소시민 아줌마다. 그 와중에 나이 들수록 가꾸며 예뻐지고 싶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길어보겠노라' 결심한 타이밍이었다. 이십만 원가량의 파마 비용을 남편 카드로 긁었다. 전업주부인 나에겐 큰돈이며 헤어 비용은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들여야 하는 지출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동네 미용실을, 이왕이면 헤어스타일도 잘하는 헤어디자이너를 찾고 싶을 뿐이었다. 단정해지긴 했지만, 추가된 매직 때문에 내가 기대했던 볼륨의 S컬 파마는 이번에도 아쉬웠다.


난 범띠 아줌마다! 낼모레면 반백년 나잇살을 먹는다. 푸석거리는 피부에 늘어나는 오겹 줄 뱃살, 끼니때마다 몰려오는 식곤증 증상의 낮잠은 그렇게 나이 든 티를 냈다. '나이 먹는구나!' 흔하게 튀어나오는 말이 됐다. 건강보조제의 힘이 이제 필수다. 집중관리가 필요한 때다. 철부지 아줌마! 한 살 더 먹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내가 이래도 되나?' 싶긴 하다. 주변에서는 주식투자에, 스몰 비즈니스에, N 잡러에 하는 일만 여러 가지, 바쁜 시간들을 보내는 듯 보인다. 나는 나의 때에 맞춰 '다시 책'을 선택했다. 누군가처럼 다독가는 아니다. 수십 년간 학문에 몰두한 학자분들과도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만의 강점을 살려, 내 페이스대로 서두르지 않고 나아가고자 한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절판된 책을 중고로 구했는데, 책이 집으로 도착하던 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끄아악!" 정말 좋아서 기분 째지는 목소리, 그런 비슷한 소리가 났던 것 같다. 글쓰기 시작했다. 낭독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비로소 나를 찾고 편안해진 기분이 든다. 북튜버 시작했다고 알리는 나에게 사촌이 전화를 했다. "누나, 북튜버해도 돈 많이 못 벌어." 자식, 오랜만에 전화하고서는 딴에는 나를 생각한답시고 꺼낸 말이란 게, 서로 웃고 말았다. 난 돈 버는 게 젬병인가? 아니, 앞으로 돈 많이 벌 거야. 여러 가지 또 배우는 중이다.


사회 진출 재기를 어렴풋 꿈꾸는 꽃띠, 중년 아지매. 돈 버는 데 진심 '맹'에 가깝다. 개인 홍보며 마케팅 전략이며 새롭게 다져야 할 1인 사업가 마인드셋이 좀 귀찮다. 게으른 탓도 있겠다. 핫한 주식 붐에도 눈만 껌벅이며 달려들지 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이런 나에게, 힘든 건 옆지기 남편이겠지. 헛똑똑이 마누라 둔 덕에 남편만 열심 일하는 모양새다. 사업한다고 지난해부터 열심 뛰어다니는 내 짝꿍. 내 첫 키스 행운의 주인공이니까, 좀만 더 참아주면 안 잡아먹을 테다. 나를 쟁취했으니 복에 겨운 그가 아닌가? 오히려 남편에게 큰 소리는 쳤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당신 사업 후원해줄게!" 실현되던, 말던 그냥 내뱉은 말이긴 한데 이상하게 기가 죽지 않았다. 나는 범띠, 맘에 든 호랑이띠. 난 꽃중년 범띠 아줌마다. "어흥!"


어느 날, 내 짝꿍이 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너 진짜 순진한 거냐, 정말 세상을 모르는 거냐?" 경제 자립 진심하고 싶다. 남편이 주는 용돈을 타다 쓰는 내가 좀 모자라보인다. 돈을 못 버니 남편에게 눈치 보는 신세가 되었다. 전업주부라고 해도 살림을 알차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나름 바쁘다. 이도 저도 아닌 불량 주부 9단! 우리집 물주인 남편에게 좀 밀린다 싶을 땐, "난 호랑이 띠고, 당신은 쥐띠." 불쑥 '십이지신의 띠' 얘기를 해가며 눌린 기를 살리려 애쓴다.


위드 코로나! '너도나도 돈 끌어모으기'가 최대 관심사로 뜨겁다. 남편에게는 용돈만 받아 척척 잘 쓰는 내가 예뻐 보일 수만 없겠지. 나도 자존감 때문인지, 자존심이 상하곤 한다. 살림도 중요하지만, 돈이 없음 힘 빠지는 건지, 잔소리 늘어난 남편이 '치사빤스'일 때가 있다. 은근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남편에게 화도 난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긴 하다.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 돈 버는 것에는 안일하고 게을렀다. 돈 쓰는 건 자신이 있고, 돈 버는 건 귀찮았다. 이제는 나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조바심 내지 말자. 스몰 비즈니스로, 여러 파이프라인 도구를 삼아 하나씩 시작하면 괜찮을 거야. 돈 버는 데 으린이인 나를 뜨겁게 응원한다. 경제 자립을 꿈꾸는 꽃중년 나에게.

"살아내느라 애썼어. 그래. 힘내자! 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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