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자란다

by 나나

수능 끝나고 친구들이 운전면허 학원에 다닐 때 나는 다니지 않았다. 면허를 늦게 딴 엄마가 차 사기 전에 따야 한다며 말렸기 때문이다. 취업하자마자 면허를 딴뒤 한동안 엄마의 낡은 차로 출퇴근했다. 이리 쿵 저리 쿵 박아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차였다. 얼마 후 정말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거리에 새롭게 발령받아 차를 구입했다.


함께 하숙하던 친구 중 차가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기에 항상 운전은 내 몫이었다. 고창은 정말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에 매주 평일 중 하루는 광주에 갔다. 주말이면 전주 집에서 고창 하숙집까지 왕복했다. 그러다 보니 장거리 운전이 익숙해졌다. 기본 생활 반경이 넓었기 때문에 장거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힘들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한 시간 반 이내 거리는 옆동네와 다름없다. 위로는 대전, 아래로는 광주까지 가볍게 다닌다. 옆에서 같이 떠들 사람만 있다면 먼 거리도 괜찮다. 혼자 운전할 때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실컷 떠들고 나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밤운전도 힘들어하지 않는 탓에 저녁에 이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차에 수염이 자란다.

아무리 차를 더럽게 쓰는 나라도 조금 괴로워진다.


어두운 밤, 차 헤드라이트에 달려드는 하루살이들이 그대로 차에 남기 때문이다. 그들이 화려한 불빛을 향해 왔다가 교통사고 당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짜증과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이 나온다. 차는 굴러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수염자국을 참기는 힘들다. 그때마다 세차를 할 수는 없다. 다시 밤에 달리는 순간 도루묵이 돼버리니. 그래서 여름만 되면 차가 며칠 면도 못 한 아저씨가 되어버린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잠시 말간 얼굴이 될 뿐이다. 회사 주자창에 나란히 서있는 차 중 가장 행색이 비루한 차가 내 차다. 조금 부끄럽다.


가을이 오면 세차를 해야겠다. 새로운 계절 맞이하며 그들의 장례식을 치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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