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동기들 보러 진주 가려고.
그래? 그럼 나도 애들 볼 겸 같이 내 차 타고 가자.
대학 동문이자 군산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두 시간을 달려 진주에 도착했다.
만난 친구들은 졸업 후 한 번도 못 본 아이들이다. 어떤 이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서로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전북으로 임용고시를 본 뒤 진주 인연은 단절됐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그중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친구는 내게 너무 미안했다며 사과했다. 함께 붙어 다니며 놀았던 친구들을 15년 만에 보았다. 주고받은 연락이라고는 카톡 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 시절 만나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라서 그런가. 20살 때 느낌 그대로 대화하며 변함없는 우리 모습에 서로 신기해했다.
야, 우린 어째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냐.
오랜 시간 외동으로 자란 탓인지, 타고난 기질 탓인지 나는 단체 무리에 함께 하는 걸 불편해했다. 대신 소그룹에 강했고, 일대일 관계 유지를 잘했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 무리에는 끼지 못했지만, 다른 과에는 친한 사람 한두 명씩 꼭 있었다. 그리고 한두 명과 오랜 시간 연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 나에게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겨우 중학교 1년 동안 같은 무리에서 종종 놀았을 뿐인데,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친구가 있다. 1년 함께 놀고 2학년 때 전학 가버린 친구들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연락한다. 오히려 함께 졸업한 친구들과는 연락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2, 3학년 같은 반이었던 친구. 만약 내가 범죄자가 되어 도망 다닌다면 몰래 숨겨줄 친구다. 20여 년을 변함없이 옆에서 도움이 되어주는 그녀는 나의 중학교 동창과 결혼하였다. 두 사람을 만나면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따뜻함. 주변 친구들의 소식은 덤이다.
결이 맞은 사람들만 결국 옆에 남았을 테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제 본 사람 같은 편안함이 있는 친구, 어제 연락했어도 오늘 또 할 말이 있는 친구, 나의 부족한 면을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친구, 그들이 내 친구라 좋다. 그 인연을 잘 이어 나가고 있는 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