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문제는 남성 문제다

시댁갈등이라는 고래싸움, 남편도 고래다

by 레인

상상을 해보자. 나의 부모님이 내 친구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설거지 안 하냐고 눈치를 준다면? 이때 부모님의 무례함을 지적하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보기> ①엄마 친구 아들 ②부모님의 부모님 ③ 나 ④ 내 친구

정답은 ③나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시댁은 여전히 불편한 공간이다. 가부장제가 응축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성 쪽의 가족을 낮춰 부르는 용어( 처'가', 처형, 처제, 처남)와 남성 쪽의 가족을 높여 부르는 용어(시'댁',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를 굳이 비교하며 불평등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에 찾아온 당신이라면 어느 정도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있을 것 같다.


0. 시댁 문제가 남성 문제인 이유

시댁은 가부장제가 응축된 공간이다. 시댁이라는 가부장제의 주된 행사인 제사는 아버지의 아버지들만을 기릴 뿐, 시어머니의 부모님과 며느리의 부모님은 추모의 대상으로 제사에 편입될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버지들만을 추모하는 이 제사에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남의 집 딸들'은 제사를 주관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제사를 위한 노동은 그들의 의무다. 아버지의 아버지로 이어지는 돌봄 노동이 모두 '남의 집 딸들', 즉 여성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대표되는 여성들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제사에서 음식을 전혀 하지 않고 손님들과 거실에서 대화하는 건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만, 며느리가 제사 끝날 즈음에 와서 노동은커녕 음식만 싸가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다. 이렇듯 남성인 남편과 시아버지는 돌봄 노동을 수행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기에 비난받지 않지만 여성들은 돌봄 노동을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규칙을 어길 경우 쉽게 비난받는다. 그리고 돌봄 노동에 대한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중심으로 발생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기르는 제사. 그러나 정작 제사를 준비하는 건 '남의 집 딸들'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댁 갈등, 고부갈등으로 대표되는 갈등의 진짜 원인은 시어머니, 며느리의 문제가 아닌 가부장제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부갈등의 해결 주체를 남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1. 그것은 남편이 할 일이다: 효도는 대리 부르지 마세요

며느리에게 주로 요구되는 덕목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뼈 빠지게 전 부치기, 시어머니와 시어버지에게 (친정부모에게도 안 하는) 안부전화를 자주 걸기, ‘도련님’, ‘아가씨’ 등 남편의 가족 챙기기 등이다. 모두 시댁이라는 가부장적 가족의 형태를 위한 돌봄 노동이다. ‘백년손님’ 사위에게 이 돌봄 노동이 요구되는가? 사위는 얼굴도 못 본 아내의 할아버지를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장을 보고 기름 냄새 베이도록 전 부치는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위는 장모와 장인어른에게 사근사근 전화해서 ‘아들같이’ 안부 전화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사위는 자신의 어머니는 모시지 못해도 장모와 장인어른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모실 것을 요구받지 않는다. 남성들이 이 모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동안 그들의 부모는 누가 돌보았을까?

‘그 집 아들 효자다’라는 칭찬의 이면에는 며느리의 대리 효도가 있다.

자신의 가족에 대한 돌봄 노동은 자신이 해야 한다. 남성들은 이제 대리 효도가 아니라 직접 효도해야 한다.


2. 그것은 남편이 할 일이다: 본인 가족의 무례함은 본인이 제지하세요

또 하나 고부갈등의 원인은 시댁의 무리한 요구, 즉 무례함이다. 시부모는 자신의 아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생일상을 며느리가 차려주길 기대하고 아들의 아침밥을 차려주길 기대하며 조금이라도 핼쑥하여지면 눈치를 준다. 이것을 며느리가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이때 무례함을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동시에 제지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첫 번째로 발언권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시댁'은 남성의 가족이기에 권위를 지니는 가부장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여성이라도 며느리에 비해 위계를 지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주체적인 여성이라도 며느리라는 사회적 지위를 덮어쓰는 한 발언권은 삭제된다.

하지만, 시댁이라는 가부장제에서 남편은 발언권이 있는 존재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가부장제의 상속자로서 '아들'의 발언은 발언력을 지닌다. 아들은 "집사람이 명절 때 처가에 가지 못한 만큼 이제부턴 명절에 가지 않겠어요!"(기사 링크)라고 해도 비난받기는커녕 선언한 대로 할 수 있다. 이렇듯 며느리는 시부모의 무례함을 지적하고 제지할 수 없지만 아들은 가능하다.

아내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말보다 본인의 부모에게 할 말은 할 강단이 필요하다.

자신의 부모에게 거절할 용기가 없다고 많은 남성들이 핑계 대지만, 실은 '타인', 즉 아내 때문에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용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의 일이었다면,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치고라도 했을 남성이 수두룩 빽빽하다.

두 번째는 본인 가족의 무례함은 본인이 제지해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못 들은 척하고 조금만 참아”라고 말하거나 “왜 우리 엄마를 욕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책임전가다. 사위는 백년손님이지만, 며느리는 백년손님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돌봄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 무례함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제는 며느리 또한 사위와 마찬가지로 백년손님임을, 백년손님처럼 대우받을 필요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가족이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가 무례한 것임을 인지하고 제지할 필요가 있다.

출처: <서밤 블로그>
젠더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듯, 시댁 문제 또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댁이라는 젠더 문제에 있어 중요한 행위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남편이다. 애초에 시댁 갈등은 남편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여기서 '제 역할'이란, 우유부단한 중립이 아닌 자신의 부모에 대한 단호한 제재를 의미한다.


3. '아들'에서 개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들이 시가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우리 부모님은 다르다"라고 하며 결국은 회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럼으로써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한 개인이 아닌 '아들'의 위치에 머물고자 한다.

이것은 ①내 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사회적인 이유) ②부모에게 NO를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심리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부모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비판하되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가부장제의 배당금을 상속받는)'아들'에서 오롯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양육자를 극복하는 정서적 성장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결혼해도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정서적 자립을 할 기회가 없다. 아직까지도 결혼은 부계혈통제에 대한 며느리의 일방적인 편입이다. 여성이 결혼할 때는 '시집' 간다고 말하지만, 남성이 결혼할 때는 '장가' 간다고 말하는데, 이때 '장가의 의미는 사내가 아내를 '맞는' 일을 의미한다. 결혼행진곡에 맞춰 친정아버지와 행진한 신부는 친정아버지에 의해 남편에게 넘겨진다. 며느리는 명절에 처가보다 시가에 '먼저' 가야 하고 '오래' 있어야 하며 친정 부모님 모시는 것보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우선시된다.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은 며느리의 지위가 나아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살갑게 돌봄 노동을 수행하라는 의미다. 결혼할 때 있어 여성은 ‘시집’을 가지만, 남성은 아내를 맞이하듯이(장가) 결혼해도 남성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를 객관화하고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분리될 기회가 없다.

비판한다는 것은 성장하는 과정이다.

절대 거절하지 못했던 존재에게 자신의 주장을 표현할 수 있는 자아의 성장인 동시에 부모에게 부족한 점이 존재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정서적 성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남성은 가부장제의 상속자인 아들에서 오롯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성장하는 과정은 애착으로 시작돼서 분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댁갈등이라는 젠더 문제에 남성이 책임지는 과정은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자립을 통한 성장' 과정이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개별적인 존재임을 깨닫고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기대에 따라 '나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 즉 정서적 자립으로부터 성장할 수 있다.

시댁에 대한 아내의 불평에 대해 '왜 우리 엄마를 욕해?'라는 반응을 하는 것에서 정서적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양육자를 사랑하지만 비판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비난받을 수 있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 그 과정에서 자아가 성장할 수 있으며 오롯한 개인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아내에게 부담을 지우지 말자. 이것은 남성의 책임이자 필요다.


시가라는 젠더 문제를 남성 본인이 책임지는 과정은 (가부장제의 배당금을 상속받는)'아들'에서 오롯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양육자를 극복하는 정서적 성장인 동시에 가족 내의 젠더 문제에 대한 사회적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구체적인 해결사례가 담긴 링크를 첨부해봅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글. "집사람이 명절 때 처가에 가지 못한 만큼 이제부턴 명절에 가지 않겠어요!" 명절 스트레스를 받던 평범한 중년 부부가 남편의 결단을 통해 효과적으로 시댁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64314&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서밤 블로그> 명절에 각자 자신의 본가로 향하는 서밤 부부의 이야기. 이때 이것을 부모에게 선언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전적으로 남성이 담당한다.

http://www.hankookilbo.com/v/da029ef4de884b339362c4ddd4b3873e

http://blog.naver.com/leeojsh/220921989667

웹툰 <며느라기> 요즘 시대는 없을 거 같던 시가 내 성차별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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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사랑한다면 왜?> (김은덕, 백종민) 성평등한 삶을 고민하는 두 부부의 고민과 일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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