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는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동거를 둘러싼 가부장적 담론들에 대한 거절

by 레인
결혼 전제로 잘 살아봐라. 요즘은 동거가 흠이 아니라더라.

필자는 파트너와 함께 동거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파트너의 부모님에게는 동거를 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었는데, 그것은 가부장적인 부모님이 받아들이시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기도 했고 그 우려의 불똥이 우리에게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편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파트너의 어머니에게 동거를 들키고 말았다. 부정적인 첫 반응을 보이셨던 파트너의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자 "결혼 전제로 잘 살아봐라. 요즘은 동거가 흠이 아니라더라."라는 반응을 보이셨다. 얼마 전 파트너가 5년 후 결혼할 계획을 밝히자 보인 반응이었다.


파트너의 부모님께 동거를 숨겨야 했던 상황이 못내 불편했던 나는 그래도 파트너의 어머니께서 동거를 인정하고 응원해주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1. 동거를 축복하는 것이 아닌 허락한다는 어투였으며 2.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야만 허락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였다.

네, 불편했어요.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동거 또는 결혼

필자가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 들렸다.

"솔직히 결혼할 사람이 동거했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냐?"

동거에 대한 낙인에 기분이 상한 필자는 함께 있던 친구에게 털어놨지만 친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어차피 너네 결혼할 거 아니야?

이 말에는 결혼의 선행과정으로서 동거를 하니 당연히 결혼을 하겠지, 동거라는 비난받을 행동을 했지만, 결혼을 통해 면죄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주거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동거'라고 불리는 삶의 양태를 선택해서 현재 살고 있고 앞으로 가능하다면 결혼이라는 걸 해볼 생각도 있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동거를 해보고 연애를 하는 그런 이유는 당연히 아니다. 파트너로서 우리는 함께 살고 싶고 둘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 주거 방식으로서 동거를 선택했을 뿐이다. 향후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해진다면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회적 가족으로서 법적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데 '신혼부부'라는 타이틀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거를 하면서 사회적 가족으로서의 법적 보장의 필요성을 자주 느끼곤 한다. 필자와 파트너가 함께 살고 어떤 부부보다도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공유하더라도 법적 가족이 아닌 우리는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없어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동거를 둘러싼 위선적인 담론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할 수 있는 자유연애가 당연한 시대라고 하지만 실은, 연애와 동거 모두 결혼에 종속된 시대를 살고 있다. 아직까지 동거에 대한 담론은 '내 딸이 동거를 한다면?'을 주제로 찬성 vs 반대로 이루어지고 있고(내 삶을 왜 당신들이 찬성 반대하시냐고요) 동거는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나 찬성된다.

실제 동거라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나의 개인적인 삶의 형태가 찬성 반대의 도마 위에 올려지고 결혼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스럽다.


그나마 결혼을 전제로 해서 동거를 찬성한다는 담론은 얌전한 편이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동거의 의미는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동거는 여성에게 금기의 대상이다. 구글에 한글만 검색해도 나오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이미지들(포르노)이 넘쳐흐르는 사회임에도, 아직도 순결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여성의 선택을 제약한다.

장위안이 여자였다면 성적대상화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동거 경험을 밝힐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장위안씨. 미안한 건 결혼할 마음없이 동거한 게 아니라 당신의 남성중심적 가치관입니다



동거는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동거와 결혼을 양가 부모님께 '허락'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개인의 결합이 아닌 가문과 가문 간의 결합이자 여성이 부계혈통으로 일방적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개인과 개인이 결합하는 것이라면, 원가족에게 '통보'하면 되겠지만, 결혼이 부계혈통에 대한 '편입'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당연히 원가족이 외부자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허락'해주어야 한다.

우리 커플은 그런 방식의 결혼, 즉 부계혈통에 대한 여성(나)의 일방적인 편입을 거부한다.

따라서 허락은 필요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원가족으로부터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립한 한 명의 오롯한 개인으로서 결합하길 원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둘로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살아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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