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고 내전 성폭력 다큐멘터리 <시티 오브 조이> -
총총 가벼운 발걸음 끝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여성들. 몸짓은 제각각이지만 춤을 추며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는 여성들. 색색의 색연필로 자신의 성기를 그려내고 까르르 웃어대는 여성들. 이곳은 콩고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쉼터이자, 그들을 리더로 양성하는 기관,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이다.
전쟁 성폭력을 겪은 피해생존자의 모습.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가. 당신과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모습은 몹시 전형적이고 제한적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묘사되곤 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한적인 통념은,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피해를 씻어내고 극복하기 어렵게 한다. ‘피해생존자는 아프다’라는 통념은, ‘피해생존자는 아파야 한다’는 당위로 확장되어, 피해생존자의 모습을 가둬버린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적극적이고 강한 피해생존자보다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생존자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된 사회 안에서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다양한 색깔의 피해생존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각자 다른 고유한 색깔을 지닌 여성들의 모습이 겹치고 겹쳐, 웃음과 치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피해생존자들이 정말 다양하구나, 맞다 모든 사람은 다 다양하지’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다. 전쟁 성폭력이라는 피해는 그들 삶의 일부일 뿐, 결코 삶 자체를 규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당연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왔던 그 진실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물론 '피해생존자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처는 상처 자체로 아픈 것이며, 그 상처를 충분히 아파하고, ‘아픈 나’를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그 과정을 담백하게 따라간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혼자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가만히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그 피해의 고통에 말없이 함께 아파한다. 토해내듯이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사람, 자신의 아픈 감정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말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말하기를 모두 ‘함께’ 들어내고 ‘같이’ 아파해낸다. 이때 나만 경험했던 아픔은 모두가 경험했던 아픔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수료자 제인은 말한다
“이 곳에 오기 전, 나는 이 고통을 겪은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어요. 난 혼자가 아니란 걸.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프로그램인 ‘자신의 마음 표현하기’ 시간. 누군가는 어린 딸을 보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생각나 미워했지만, 이젠 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에서 치유와 공감을 경험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한 만큼, 타인을 돕고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사람을 구함으로써 하나의 세상을 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침묵으로 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 ‘센터 시티 오브 조이’의 여성들이 침묵해야 했던 피해를 목격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부수는 순간, 침묵해야 했던 피해생존자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느꼈다. 영화 <시티 오브 조이>는 ‘전쟁 성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지만,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함께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1000명의 여성이 수료하고 1000명의 리더를 얻은 공간, 영화<시티 오브 조이>를 당신과 함께 보고 싶다. 그럼으로써 침묵을 깨고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