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희 할머니 기소순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녀의 기억과 저의 상상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만들어진 글임을 밝힙니다.
저 가시내 또 왔네.
넙적하고 뽀얀 얼굴의 잇짱이 빼꼼히 집안을 들여다보다 집안에 시시코가 있음을 확인하고 제집 들어오듯 싸리문을 열었다. 지금도 덤덤하고 그때도 덤덤했을 시시코는 중얼거렸다.
"저 가시내 또 왔네."
잇짱과 시시코. 둘 다 일본식 이름이지만 그녀들의 위치성은 계급도, 국가도, 민족도 다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부산. 잇짱은 식민지의 항구도시 부산에 사업하러 온 일본인의 딸이었고 시시코는 어느 가난하고 따뜻한 조선인 부부의 딸이었다. 시시코는 생선가게를 하는 어머니 대신 학교를 가지 못하고 온종일 살림을 해야 했던 조선인 소녀였고 잇짱은 해사한 집에서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를 가는 일본인 소녀였다. 그러나 한 가지 둘의 공통점이 있었다. 친구가 없다는 것, 특히 잇짱에게.
남의 집에 들어온 게 그제야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잇짱은 괜히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살그머니 시시코네 집 마루에 앉았다. 시시코는 '왔나?'하고 아는 체를 한 후 사부작사부작 부엌일로 돌아섰고 잇짱은 늘 그래 왔다는 듯이 시시코의 막냇동생과 장난치며 시간을 보냈다. 깊숙이 들어온 햇빛이 마당을 데우는 어느 오후였고, 학교 끝난 잇짱과 학교 못 간 시시코의 시간이 겹치는 낮이었다.
야, 밥 무라(먹어라)
동그랗고 진한 쌍꺼풀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지닌 조그만 시시코는 잇짱이 앉아있는 마루에 일단 밥상부터 펼쳤다. 끼니가 되었는데 빈 속으로 보낼 수 없다는 게 어린 시시코의 생각이었다. 잇짱은 조선어를 할 줄 모르고 시시코는 일본어를 할 줄 몰랐지만 손짓이면 다 통했다.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밥 먹으라 하니 통통한 볼살의 잇짱은 괜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헥헥
하지만 머지않아 잇짱의 웃음은 사라지고 헥헥거리는 숨소리와 눈물방울만 또르르 흘렀다. 일본인인 잇짱에게 조선의 김치는 너무 매운 것이었다. 시시코는 괜히 웃음을 참으며 물 한 대접을 건넸다. 잇짱은 시시코가 건네준 물을 먹고 또 김치를 먹고 또 물을 먹으며 밥 한 그릇을 비워나갔다. 그때였다.
야, 이 일본 놈의 가시내 또 왔나?
개구지기도 개구진 시시코의 남동생, 부산 머스마들이 우글거리며 돌아왔다. 머스마들은 일본인이 밉기도 하지만 사실 순둥이 잇짱이 만만하니 괜스레 잇짱을 더 괴롭혔다. 머스마들은 '일본 가시내 썩 꺼지라, 노린내 난데이! 느그 집으로 가라!' 하며 소리를 지르며 놀려댔고 그러면 순하디 순한 잇짱은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집으로 달아났다. 시시코는 그렇게 돌아가는 잇짱을 잡지도 못하고 머스마들을 혼내지도 못하고 그저 다시 바삐 집안일로 돌아갔다. 그날 시시코가 밥을 다 먹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잇짱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또다시 시시코네 집 싸리문을 열었다. 조선어를 할 줄 모르는 잇짱과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시시코의 공용어는 언제나 손짓이다. 잇짱은 밥 먹는 시늉을 마구 하더니 시시코를 잡아끌었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자신의 집에서 같이 밥을 먹자는 것 같았다. 시시코는 진짜 바쁘기도 하고 사실은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게 부끄러워 괜히 거절했다. 잇짱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조선어면서.
"안된다 내 일해야 한데이"
그러나 오늘의 들뜬 잇짱은 끈질겼고 결국 시시코는 지기로 했다. 사실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따라간 잇짱의 집. 말로만 들었던 일본 놈들의 집은 해사하고 해사했다. 일본 놈들은 사발 팔방 귀신을 믿는다더니 사방팔방 사줏단지도 있고 뭔 놈의 돗자리(다다미)를 방에 깔고 잤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가집에서 6남매 우글우글 사는 그녀의 집보다 해사했다. 시시코는 낡은 저고리 소매를 등 뒤로 숨기로 동그래진 눈은 숨기지 못한 채 일본 놈들의 집을 구경했다. 그 때 처음 본 잇짱의 엄마가 친절한 미소로 시시코에게 인사했다. 알아듣지 못할 일본 말이었다.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 하지만 일본식 나막신인 게다를 신고 있던 식민지 소녀 시시코는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그래서 그냥 까딱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예"
잇짱 엄마를 따라, 잇짱을 따라 집에 들어가면서 시시코는 잇짱이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조선어로 중얼거렸다.
"야, 느금마 참말로 좋네 "
'우리 어무이는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팔고 다 쉰 목소리로 집에 돌아오는데, 그 지친 몸으로 또 우리를 혼내는데, 느그 음마는... 좋네'라는 말은 그냥 삼켜버렸다, 시시코는.
그 날 잇짱의 엄마가 시시코에게 대접했던 음식은 오므라이스였다. 1932년에 태어난 시시코에게 오므라이스는 진기한 음식이었다. 시시코는 그 날 먹었던 음식을 잘 보아두었다가 60여 년 뒤, 그녀보다 68살이 어린 계집애들에게 오므라이스를 해 준다. 내 친구 잇짱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먹었던 음식이라며.
시시코는 나의 할머니 기소순 씨의 창씨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