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희 할머니 기소순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녀의 기억과 저의 상상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만들어진 글임을 밝힙니다.
영도댁은 숨을 내쉬어 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뽀얀 입김이 내쉬어졌다. 초여름의 어느 밤이었지만, 원주의 밤은 차고 추웠다. 더구나 부산에서 나고 자라 눈도 보지 못했던 영도댁에게 원주는 더욱 추운 곳이었다. 영도댁은 자신이 추운 이유는 그래서인 거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영도댁이 이 밤에 아기를 업고 냇가에 서성였던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의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술만 마시면 살림살이를 부수고 영도댁을 때리는 사람이었다. 영도댁은 결혼 후에서야 맞는 사람이 될 때의 감각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굴종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맞는 사람이 될 때, 맞지 않는 시간도 맞는 시간이 된다. 영도댁은 밤에는 술 취한 남편에게 맞았고 낮에는 그 밤이 올까 두려워하며, 그런 자신의 상황에 서러워하며 낮을 씹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이 남편이 집에 오는 시간에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남편이 술에 취해 잠든 후에 들어가면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몇 번의 성공을 맛본 후, 영도댁은 오늘도 이 푸른 밤에 냇가를 서성이며 서 있는 것이었다.
영도댁은 졸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춥다고 생각했으며. 또.. 서럽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이 시간에 발을 뻗고 집에서 잠을 청할 때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으니까. 발을 뻗고 자야 할 집이 그녀에게는 폭력으로 점철된 전쟁터였으니까. 영도댁은 서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잠시 잊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으악새야, 으악새야 울지마라.. 울지마라..."
'울지 마라'라는 노래 가사를 부르니 참고 있는지도 몰랐던 영도댁의 마음속에서 서러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듯했다. 영도댁은 요전 날 친정에 다녀왔던 날을 떠올렸다.
"니 살림 매(꼼꼼히) 하는데 왜 못사노?"
영도댁 어머니는 질문의 형태를 띤 걱정을 던졌다. 영도댁은 차마 남편이 술을 먹어서 그렇다고, 술을 먹으면 나를 때린다고, 노름에 돈을 탕진하고 자신이 새우젓 장사해서 번 돈까지 뺏어 탕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서러운 자신의 처지를 친정 식구에게 말함으로써 다시금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도댁은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키다 원주로 돌아왔다.
옛 생각을 더듬다 영도댁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꽤 지났을 테니 지금쯤 돌아가면 남편은 자고 있을 터였다. 영도댁은 잠든 아기를 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키는 작고 그림자는 유난히 긴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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