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움길> 리뷰
* 이 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말보다는 '위안부' 생존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에 의한 피해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된 삶을 살아낸 주체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에서는 000 할머니와 같이 생존자의 성함 뒤에 '할머니'를 붙였습니다. 생존자인 동시에 여성 노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삶에 대한 존칭을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를 묘사하는 컨텐츠는 대부분 다음의 두 가지를 포함하곤 한다.
끌려가기 전의 유년시절을 아름답게'만' 묘사하거나
숭고하거나 무해한 할머니로 묘사한다.
끌려가기 전의 유년시절을 아름답게'만' 묘사할수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더욱 끔찍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는 우리가 일본구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로서 피해의 잔혹함을 강조한다.
또는 노인이 된 '위안부' 생존자를 무해하거나 숭고한 할머니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때 '위안부' 생존자들은 존경스러운 면모를 가진 인물이자 넉넉하고 자애로운 인품을 가진 할머니로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 또한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생존자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로서 생존자들의 인품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존자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잔인해서도
그들이 숭고한 인품을 지녀서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존엄성을 침해당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가난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쟁 성폭력을 겪어야 했으며 동시에 그들이 겪은 전쟁 성폭력이 일본 제국주의에 위해 '위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해방 조선에서조차 그들이 겪은 성폭력은 은폐되었고 수치심의 당사자로서 비난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이들을 존중하고 이들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폭력은 부당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당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의 숭고함과 무해함만을 기억하다 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생존자들을 존중할 수 없다. 숭고함만을 기억하려는 이면 뒤의 생존자는 담배 피우는 노인일 수 있고 손해 보는 것에 민감한 고약한 노인일 수도 있다.
때문에 위의 2가지 요소가 담긴 일본군 '위안부' 컨텐츠를 보고 나면 나는 그 느끼함을 갈음하고 싶어 진다. 그 갈증으로 찾아본 영화가 바로 다큐멘터리 <에움길>이다. 착하고 무해한 할머니나 소녀로 박제되지 않은 채,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자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왔던 존엄한 인권가로서의 모습이 이 영화엔 담겨 있다.
식민지배를 겪었던 땅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정부도 피해자의 상처에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을 의미한다. 가해자였던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 또한 일본 정부와 세계 열강의 눈치를 보며 정의를 모른 척하기 때문이다.
2003년, 한일 양국은 과거사 언급 없이 새 관계를 의논하기로 한다.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는커녕 과거사 언급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생존자들은 참을 수 없다. 당장 청와대로 찾아가려 하지만, 정부의 교활함이 더 빨랐다. 차가 지날 수 없도록 굴삭기로 나눔의 집 앞의 도로를 파 버린 것이다. 그 날의 깊이 페인 구멍은 생존자들이 한국 정부에 받은 상처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내 몸의 칼자국을 너희가 책임질 것이냐"며 분노하고 손수 삽으로 흙을 메우려 하신다. 분노한 할머니들은 어찌어찌 청와대 근처까지 가지만, 그곳에서조차 할머니들의 길은 막힌다. 사복경찰들이 할머니들을 에워싸고 봉쇄해버린 것이다. 김순덕 할머니는 "어느 나라의 장정이고 어느 나라의 경찰이냐"며 분통을 터뜨리시고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는 그저 대통령을 보러 온 건데, 경찰들이 우리를 집단이라고 하지만, 우리 같은 할머니들에게 무슨 집단이 있냐"며 억울함을 표현하신다. 그 날 할머니들은 청와대에 갈 수 없었다.
'위안부'라는 말은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말 그대로 일본군을 '위안'하는 여성이라는 뜻으로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위안'으로 정당화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내재된 단어이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나는 아직도 '위안부'라는 말이 싫습니다. 저는 엄연히 이용수입니다.
'위안부' 생존자는 모국어에서조차 그들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명칭을 얻지 못했다.(때문에 우리는 '위안부'라는 이름에 따옴표를 붙여 사용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라는 말이 싫다는 것을 표현하고 자신은 엄연히 이용수임을 선언함으로써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이 사회의 정형화된 시선(동정과 숭배)을 거부한다. 그리고 오롯한 주체로서의 자신을 선포한다. 이외에도 영화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핵인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이후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화 주인공이 될 정도로 증언 활동을 활발히 다니신다.
근황도 여전히 멋지신데 최근 화려한 구순잔치를 여셨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 자신을 소개하며 인권운동가로서의 증언활동과 인권운동 약력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셨다. 즉, 여성 인권운동가로서 구순잔치를 여신 것이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이미 답을 던져 주셨다.
특히 영화 <에움길>을 추천하고 싶은 건,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범한 여성 노인으로서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일상을 포착한 흔치 않은 '위안부' 관련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안부' 생존자들의 인권운동가로서 강직한 모습을 기억하고 싶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상을 살아가는 할머니로서의 삶 또한 기억하고 싶다. 어디에서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박옥선 할머니, 자신감 넘치는 핵인싸 이용수 할머니, 거침없는 김순덕 할머니, 따뜻한 이옥선 할머니, 패션리더 강일출 할머니까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의 삶,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강직함 뒤에 서려 있는 평범한 일상이 모두 겹쳐질 때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가장 완성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 말이다.
이 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위안부' 생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심에 젖게 된다. 피해자로서의 삶을 헤쳐와 여성인권운동가로서 역사 앞에 당당히 선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경탄 말이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던 여성주의가 이 땅에 발화하기 전,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폭력 피해를 그저 부끄러운 것으로 가슴에 묻으며 젊은 시절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비로소 '위안부' 피해에 공감하는 소수의 시민들이 나타났을 때, 생존자들은 이 사회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이 '위안부' 피해를 겪었음을 신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개념이 아직 낯설고 데모하는 할머니들은 더더욱 낯설었던 90년대와 2000년대에, 생존자들은 '부끄러움은 일본의 몫'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하셨다.
지금은 그래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화도 있고 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는 문제로서 공론화되었지만, 할머니들이 한창 거리에서 운동을 하시던 90년대와 200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엔 열명 남짓한 소수의 인원들이 모였을 뿐이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공감은커녕 낯설게 바라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이에 이옥선 할머니는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의 비웃음이 아팠다고 고백하신다.
긴 시간 '위안부' 피해를 마음 속에 지닌 채 살아왔다가 길 위의 운동가로 나선 할머니들에게 그 시선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년간 운동을 이끌어와 결국은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한 생존자들의 강인한 의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팠을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이 헤쳐왔던 삶에 깊은 경탄이 들뿐이다.
에움길의 사전적 의미는 '에워서 돌아가는 길'이다. 에워 돌아오는 동안 아프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으며 꽃구경도 간간히 했던 그녀들의 삶, 그 삶에 진심 어린 존경을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