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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인 May 14. 2020

할머니와 나와 노브라

원래도 말이 많은 나지만, 유독 할머니와 있을 때면 내 입이 아플 정도로 말이 많아진다. "응응, 그래그래"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던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 할머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픈 오랜 버릇이다.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나 요즘 브라자 안 하고 다닌다? 완전 답답해. 근데 요즘 사람들은 브라자 안 하면 여자 되게 이상하게 쳐다본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젖꼭지에 스티커 붙이고 다닌다? 볼래?"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윗도리를 올리고 내 젖꼭지에 붙인 스티커를 보여 준다. 할머니와 있을 때면 자꾸만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싶어 진다.


"어... 이런 것도 있네? 야, 단비야. 근데 이거 답답해 보이는데 띠뿌라"

할머니는 브라자를 안 하는 맹랑한 처녀에게 어서 젖가슴을 가리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유일하게 젖가슴을 가린 니플 스티커마저 떼 버리라고 조언한다. 나는 순순히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스티커를 떼 버린다. 할머니 말대로 답답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브라자 같은 건 없었지만, 브라자같이 가슴을 꽉 누르고 다녔어. 큰 무명천 있잖아? 그거로 가슴을 꽉 동여 메고 다녔다구. 그때 나는 어려서 그걸 하지는 않았지만, 언니들이 하는 걸 보면 얼마나 답답해 보였는지"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eje10&logNo=221224787517&parentCategoryNo=&category>

브라는 서양의 코르셋이 변형된 여성 속옷이다. 가슴 처짐을 예방해준다느니 여러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실은 코르셋처럼 여성의 몸매를 (남성중심주의의 시각에서)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브라는 서양의 문화와 함께 한국사회에 유입되었다. 그래서 나는 브라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브라처럼 여성의 가슴을 옥죄는 속옷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옛날에도 브라처럼 가슴을 가리고 옥죄는 속옷이 있었다니. 심지어 무명천으로 가슴이 튀어나와 보이지 않게 꽉 누르고 다녔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현대의 브라가 가슴을 볼록하고 가슴골을 만드는데 집중한다면, 그 당시(1930년대)의 무명천은 가슴을 꽉 눌러서 가슴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주 목표였다. 아마 그 위에 한복을 입었을 것이다.


출처 <https://glamourdaze.com/2013/03/a-brief-history-of-the-bra.html>


 무명천이나 브라나 가슴을 짓누른다. 착용하지 하지 않았을 경우 사회는 여성을 비난하며 수치심의 낙인을 찍는다. 가부장제의 형태는 달라도 여성의 몸(가슴)을 성적 대상화하는 한, 몸을 직접적으로 옥죄는 '코르셋'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문화에나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대와 문화를 넘어 32년생 여성과 95년생 여성은 오늘도 맨가슴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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