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가정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의 구성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문영의 아버지(이얼 분)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으며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지만 고문영(서예지 분)은 그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다. 보다 못한 병원장이 '아버지 산책시키기'를 처방할 정도지만 문영은 아버지를 절대 산책시키지 않는다.
드라마는 이런 문영의 행동을 판단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문영의 과거를 밝힘으로써 문영이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을 밝힌다. 문영의 아버지는 12살의 어린 고문영에게 폭력을 가한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문영이 어머니에게 정서적으로 학대당할 때 이를 방관하고 방치한 바 있다. 보통의 K-드라마라면(특히 영화 <변산>이 이런 신파 클리셰를 차용했었다), '그런' 아버지라도 용서하고 효를 행함으로써 얻는 감동을 극적으로 연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서사를 지우고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툴게 갈등을 봉합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굳이 감동 신파를 연출하지 않음으로써, 문영이 끝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아도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효도하지 않아도,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문영에게 아버지를 산책시키지 않는다며 맥락을 모르고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의 참견이 무례할 뿐이다.
문영은 곧잘 악몽에 짓눌리곤 한다. 악몽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영의 어머니다. 문영의 어머니는 문영을 자신이 원하는 인형(감정이 없는 문학 작가, 긴 머리카락 등)으로 '만들기' 위해 문영을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 격리시킨 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이것의 상징 중 하나가 바로 문영의 긴 머리카락이다.
목줄을 잘랐어
그러나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문영은 강태(김수현 분)를 만나 사랑을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문영이 감정이 없는 냉소적인 인간이기를 바랬던 어머니의 금기를 어기기 시작한다. 결국 문영은 어머니가 신신당부했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린다. 늘 긴 머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속삭이던 어머니의 당부는 문영에게 있어 어머니가 요구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자 그렇기에 문영의 삶을 옥죄였던 '목줄'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강태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어머니의 금기를 어긴 문영은 결국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어머니의 금기로부터 탈출한다. 문영은 비로소 자신의 '목줄'을 잘랐다며 짧아진 머리카락을 쑥스럽게 내보이고 강태는 그런 문영을 그저 있는 그대로 지지하고 응원할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문영은 아버지와 화해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바라는 인간상에 갇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아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당연한 절차 일지 모르지만 문영은 옛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 바로 상태와 강태 형제다.
상태(오정세 분)가 호적에도 같이 오르지 않고 피도 안 섞였으면 남일뿐이라고 말하자, 문영은 가족사진이 있으면 가족이라고 답한다. 가족사진은 호적에 같이 오르지 않더라도,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쉽게 찍을 수 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면 가능한 일이다. "호적에도 같이 오르지 않고 피도 안 섞였으면 남일뿐"이라는 상태의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가족에 대한 통념이다. 그런 상태의 말에 '가족사진'을 찍고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 세 사람의 모습은, 정상가족 너머 다양한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어머니와의 가족관계를 '그래도 가족'이라며 억지로 유지하기보다 문영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이들과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문영의 존재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그저 신화일 뿐임을 증명한다. 이렇듯 문영과 강태, 상태 형제의 가족사진은 '호적에도 같이 오르지 않고 피도 안 섞였으면 남일뿐'이라는 가족에 대한 통념을 상징적으로 해체해버린다.
흔히 부모가 자식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고 강요하는 것을 아무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흔히 부모의 지극한 사랑, '결국 부모님이 옳았다' 등으로 통용되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가 옳더라도 자식 또한 타인이다. 자식이라는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가스라이팅하는 것은 엄연한 정서적 학대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문영의 부모는 문영을 굶기지도, 물리적으로 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드라마는 문영을 통해 아무리 자식이라도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 또한 정서적 학대임을 조심스럽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런 가족을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선택한 이들과 가족이 되어도 괜찮다고 말을 건넨다. 그렇게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괜찮지 않은 이들을 위로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