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서평> 한 뼘 양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lotus

지난번 직장 동료 모임 때 한 동료가 설 연휴 동안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를 요양원에서 집으로 모셔와 지내다가 어머니의 대변을 치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치매이시긴 하지만, 딸도 아닌 며느리가 당신이 실수한 것을 치울 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아니, 친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의 대변을 치우는 며느리의 마음은 어땠을까?

명절기간만 계시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평소 요양원에서 가끔 전화가 와서 어머니의 치매 행동에 대해 불평사항을 하소연할 때마다 마음은 너무 불안하고 가끔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절망감이 든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늘은 책 '한 뼘 양생'을 읽고 난 독후감이다. '한 뼘 양생'이란 한 뼘 즉 조금씩이라도 '양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인데 이게 바로 나이 듦에 임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어쨌든 이 글의 내용은 참 방대하고 여러 분야를 아우르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작가님의 친정어머니를 통해 본 우리 사회 속 노인 돌봄의 문제였다. 작가님의 어머니는 혼자 사시다가 고령에 넘어지시면서 역시나 혼자 살던 작가님과 합가를 하게 되었다. 작가님은 왜 노인을 돌보는 책임이 가족, 그 자녀에게만 오롯이 전가되어야 하는 건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사실 예전엔 자기 아이는 그 부모가, 자기 부모는 오롯이 그 자녀가 돌보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 시대였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부모 돌봄의 문제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단 부모 세대가 예전보다 훨씬 더 오래 사시게 되었고 지금까지는 자녀가 여러 명이었으니 자녀들끼리 서로 돌아가면서 돌보거나 힘을 보탤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의 시대는 좀 달라질 것 같다.

즉, 출생률 0.6-7대의 인구감소 및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부모 및 노인 돌봄의 문제는 가족에게만 책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님은 이제 병원에 입원하면 '보호자'가 없어도 상관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전면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집에 있는 고령자나 환자에게는 방문 진료와 방문 간호, 방문 간병이 연계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돌봄을 탈가족 화하는 사회, 전문적인 돌봄 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하게 대우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하는 주장에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관련 법령이 제정비되어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시스템이 통용되는 전반적인 가치관, 그리고 무엇보다 세금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08년에 개봉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벤자민이란 사람이 할아버지로 태어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젊어져 아기의 모습으로 죽게 된다는 판타지 영화인데 만약 사람들이 벤자민처럼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마 태어났을 때는 몰라도 죽을 때는 그나마 주변 사람들한테 사랑과 귀여움(?)을 받으며 운명하지 않을까? 최소한 죽음을 앞둔 돌봄 문제만큼은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힘듦을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바로 지금 우리 부모 세대가 나이 듦으로써 돌봄을 책임질 우리 세대의 문제, 또 우리도 더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해지면 그때 불거질 돌봄의 문제가 얼마 안 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간병지옥'이란 말이 나올까? 갑자기 두려워지는 세상이다.

작가님의 혜안이 현실로 실현되길, 더 이상 가족 돌봄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사회로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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