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소멸... 양심?

최재천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by lotus

이번에 읽은 책 최재천 교수님의 '양심'이다. 소제목이 '차마, 어차피, 차라리'로 되어 있는데 이 부사어의 나열은 나중에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최 교수님은 40여 권의 저서와 8권의 번역서를 내신, 올해 71세의 노교수이다. 저술 및 강의를 오래 하신 분이다 보니 위에서 소개한 방대한 양의 책을 집필하셨겠지만 더 놀라운 건 이 분이 국립생태원장을 역임하였다든지, 김대중 정부의 동강댐 건설 저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 반대, 롯데월드 벨루가 방류 요청(이라 쓴 것은 아직도 벨루가가 그 좁은 수족관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 유명한 제돌이 방류, 호주제 폐지 등 많은 사회활동에도 공헌하셨다는 점이었다. 몸이 여러 개여도 힘들 일일 텐데 왜 이렇게 이분이 이런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바로 이 책 '양심'에서 낱낱이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양심'이란 단어를 잘 안 쓰게 되었다. 양심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나온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양심'이란 두 글자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스갯소리로 "너 (그러다) 양심에 털 난다." 또는 "양심에 찔리지도 않냐?"라는 표현도 제법 썼는데 요즘 이렇게 사용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점점 양심의 가치를 폄훼하고 애써 외면하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편한 기분이 든다... 원래 '언어는 바로 그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의 생각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즉 보편적 가치관에서 점점 양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현상이 이렇게 표현되는 듯하다.


최 교수님은 소제목의 뜻을 아래처럼 피력했다.


차마: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어차피: 어차피 이래저래 먹을 욕이라면

차라리: 차라리 화끈하게 덮어써보자!

라는 속셈(?)으로 그동안 자신의 비겁함(?)을 무릅쓰고 활동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라면


차마 외면할 수 없더라도

어차피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워서 또는 어차피 이미 기세가 기울어져 버린 일인 것 같은데

차라리 안 보고 말지

하는 진짜 비겁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정말 부끄러웠다.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다 알고 다 떠안을 수는 없다, 당연히.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첫째, 작은 기부나 공헌이 필요한 일에 내 힘 보태기

둘째, 이렇게 아주 작은 생각의 공유를 통해 큰 힘을 만들어 가기

셋째, 예전에도 싫어했지만 절대 동물들의 쇼나 학대와 관련된 활동에 참여(관람) 하지 않기.


특히 호주제 폐지를 추진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욕을 원 없이 들었다는 교수님의 회고에 우리 사회 깊숙이 박혔던 커다란 암 덩어리를 캐내 제거해 주신 노력에 정말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 중의 기득권자인데-남성, 고학력자, 교수 등-이런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신의 배움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것도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상념-호주제라는 것을 너무 당연시해 왔고 아직도 호주라는 말이 익숙한 우리 세대에서는 더욱더 강했던-이지만 이것이 결코 옳지 않음을 깨달은 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정말 보통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방류해 준 제돌이는 지금도 따뜻한 제주도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다. 다음은 롯데월드 벨라의 순서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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