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제 보니 완전 애기구나...

#화목난로 #너구리굴 #초보교사 #겨울 땔감 #번개탄 #우유곽#화목난로

by lotus

90년대 중반, 학교에 발령을 받아 1년 차 때는 전담 교사를 한 후 2년 차 드디어 내 교실을 가진 담임 교사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보다 옷의 기능들이 떨어져서 그런지 아님 정말 추웠던 건지 그때의 3월은 참 추웠다. 오죽하면 선생님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어린이날이나 되어야 내복을 벗는다."라는 말을 주고받을 정도였으니...

어쨌든 그 추운 겨울날 담임교사로서 나의 중요한 임무 1순위는 수업이 아니었다(!) 바로 아이들이 오기 전에 먼저 교실의 난로를 펴서 훈훈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었다.

우리집이 비록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화목 난로는 내가 어렸을 때 국민학교 다닐 때나 보던 것이었는데 광역시에 속한 나의 첫번째 학교 또한 내가 어릴 때 보았던 화목난로가 떡 하니 교실 중앙에 버티고 있었다. 3월초였나, 교실 수업을 하던 중 노크 소리-를 내가 못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너무나 갑자기-도 없이 드르륵 교실 앞문을 열고 학교 소사 아저씨-지금은 시설 주무관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두 분이 장비와 난로 부속품을 들고 들어오신다. 어제 주임 선생님-지금은 부장 선생님이라고 불린다-으로부터 "내일 난로 설치합니다."라는 회람을 받았었기에 아이들 책상을 이미 어느 정도 가장자리로 벌려서 공간을 확보해 두긴 했었다. 두 분은 거의 말 한마디 없이 아주 능숙한 솜씨로 교실의 공간을 확인한 후 조금 더 아이들 책상을 더 가장자리 쪽으로 옮기게 한 후 네모난 틀을 짜 맞히고 그 중앙에 난로를 앉힌다. 틀 안에 모래를 붇고 평평하게 한 후 난로에 연통을 연결하여 연통 끝부분을 운동장 쪽 제일 끝 윗부분의 유리창을 열어 딱 끼워맞힌 후 청색 테이프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모래로 채운 네모난 자리 옆에는 양철로 만든, 바닥이 넙적한 양동이를 놓고 그 안에 기다란 집게를 넣는다. 이정도면 거의 다 설치는 되었다. 수업 하다 갑자기 설치된 난로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를 위해 그 분들 중 한 분이 아주 능숙한 솜씨로 불을 피워 주시고 나가셨던 것 같다(아,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 나의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다)

"좀 있다가 연기 많이 나면 창문 열고 환기하고요, 불 조절하는 건 아시죠? 그 아래 여닫는 부분..."

이 말을 남긴 두 분은 부지런히 다음 교실의 난로 설치를 위해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가신다.

그때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내가 사는 광역시에서 무려 2번째로 큰 학교였다. 보통 한 학년에 11~12학급씩 있었고 각 반엔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요즘엔 학급수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홈페이지를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아, 이럴 수가... 그 크던 학교가 겨우 27학급으로 줄었다. 30년 전의 1/3 규모인 셈이다. 어쨌든 두 주무관님들이 설치하는 동안 초짜 교사인 나나 아직 국민학생이 된지 1년 남짓한 아이들이나 당연히 아무 것도 못하고 두 개의 눈동자로 그 분들이 하는 일을 분주히 좆는다. 주무관님들이 나가고 드디어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아까 알려준 대로 창문을 열어 연기를 내보내지만 어찌 된 건지 연기는 더 많이 나고 아이들은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추워요~" "선생님, 연기 때문에 힘들어요..."

당황한 나는 얼른 교실 앞문으로 나가 앞 교실로 뛰어간다.

"선생님, 저희 교실 좀 와 주시면 안 될까요?"

어찌할 줄 몰라하는 내 눈빛을 읽은 옆 반 선생님이 분필을 칠판 턱에 내려놓고 나를 따라 우리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성큼성큼 난로 앞으로 가서 난로 아래쪽의 문을 열고 살펴보신다. 그리고 바로 집게를 이용해서 난로통의 나무들을 몇 번 뒤적이시더니 나를 돌아보고 말씀하신다.

"김 선생님, 오늘 난로를 처음 피우다 보니 굴뚝 부분이 차가워서 이러는 거에요. 좀 있으면 괜찮을 거에요."

"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부지런히 교실로 돌아가는 옆 반 선생님의 뒷모습에 고개숙여 인사를 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선생님이 몇 번 휘적인 후 교실의 연기가 절반 넘게 빠진 것이다. 게다가 어느새 따뜻하기까지. 도데체 무슨 마법인 거지?

어쨌든 그날은 중간중간 땔감을 넣어가면서 교실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교실 뒤 청소함 속에 있던 노랑 큰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난로 위에 올려놓으니 건조한 교실도 숨쉬기 좋은 듯한 느낌이 들고 아늑했다.


다음날 아이들보다 일찍, 8시쯤 도착한 나는 드디어 내 손으로 처음 불을 피워 보기로 하고 교실에 들어섰다. 정말 냉한 느낌이 드는 교실에 들어서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벗어 내 의자에 걸쳐놓고 두툼한 체육복 웃도리를 입은 후 양철 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 건물의 뒤쪽 땔감이 모아져 있는 곳으로 갔다. 이왕이면 굵고 커다란 나무들로 골라서 오후까지 땔 수 있을만한 양으로 통을 채운 후 3층까지 그 무게에 못이겨 몸이 한 쪽으로 기울다시피하면서 낑낑대며 올라왔다.(알고 보니 굵고 커다란 나무보다 조금 가늘고 홈이 있으면서 바짝 마른 것들을 골라왔어야 했다...)

일단 바닥이 빨간 목장갑을 낀 후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둔 라이터를 꺼냈다. 난로 통에 나무를 넣기 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아이들 학습지랑 신문지 모아 둔 것을 교실 뒤쪽에서 가져와 그걸 적당한 크기로 찢어 꽤배기 모양으로 꼰 후 난로통에 넣었다. 라이터를 켜서 종이에 붙인 후 바로 나무 땔감을 2~3개 넣었다.(나무 땔감을 너무 빨리 넣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는 이제 된 거지? 하는 마음으로 칠판에 아이들이 할 일 적어두고 오늘 가르칠 것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그 사이 일찍 오는 아이들 몇몇은 교실에 들어와서 가방 정리하고 숙제를 앞에 갖다 내고 자리에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아침 자습을 시작했다.

근데 이상했던 건 이제쯤 분명 훈훈해져야 할 교실이 여전히 냉랭하다는 거였다. 아이들도 나도 여전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이상해서 집게로 난로 통을 열어 보니 이런...! 아까 내가 붙인 불씨는 꺼지고 넣어둔 나무 땔감은 여전히 튼튼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있는 거다. 정말 이상했다. 어제 그 주무관님하고 선생님이 하시던 것처럼 했는데 왜 이러지?

하는 수 없이 어제 들었던 '난롯불 피우는 비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단 교실 청소함 속에 넣어둔 왁스통을 가져와 왁스를 한 주걱 퍼서 나무땔감 사이로 넣어 비볐다. 그리고 다시 아까의 과정을 반복했다. 제발 불아, 붙어라... 제발.


수업은 해야 하는데 우리반 난로는 불이 조금 붙는다 싶다가도 자꾸자꾸 꺼지길 반복했다. 아이들은 춥다고 하고 내 마음은 물에 젖은 나무만큼이나 까맣게 타 들어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러다간 하루종일 수업도 못하고 불도 못 피우겠다 싶어서 다시 옆 반 선생님께 찾아갔다. 교실 밖 창을 통해 거의 울 것 같은 내 얼굴을 본 선생님은 어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교실을 나와서는 바로 우리 교실로 직행하셨다. 그러더니 다시 당신 교실로 가셔서는 빨강 바구니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엔 우윳곽을 펴서 말린 것이 몇 개 들어 있었다. 그 우윳곽이 불쏘시개가 될 줄 몰랐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반 아이들과 나는 다시 따뜻한 난로 2일채를 보냈다.

'아, 나도 우리반 우윳곽을 저렇게 말려 두어야 겠다...'


그 뒤로 나는 아침마다 난로 피우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우리반 아이들과 따뜻한 교실을 만들고 싶어서, 아침에 제일 먼저 와서 옆반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왁스칠한 땔감도 넣어보고 역시나 신문지랑 시험지 꽈배기로 불쏘시개도 만들고, 심지어 번개탄도 사 가지고 와서 넣어 불 피우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렇지만 나의 난로 피우기는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 10번 중 성공하는 건 3번 정도였나? 타자라면 제법 쓸 만한 타율이었겠지만 항상 불을 잘 피우시는 옆 반 선생님에 비하면 진짜 초라한 성적이었다. 우리반은 가끔 너구리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연기가 나서 교실 앞뒤문과 창문을 모두 다 열어놓기도 했고, 처음엔 제법 활활 타오르던 불이 나무만 먹으면 갑자기 죽는 등 처참해질 때가 있었다. 아, 아이들과 난로에다 군고구마 구워먹고 보리차 따끈하게 끓여서 추운 날 나눠 마시고 싶었던 내 로망도 덩달아 식어갔다...


그 뒤로도 어쩔 수 없이 옆 반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는데 한번은 이런 말씀을 들었다.

"아이구, 선생님 완전 애기구나~"

옛날 사범학교 출신이셨던, 그래서 20살에 처음으로 섬마을 교사가 되셨다는 그 분은 아마 그때 내 모습에서 당신의 옛날 모습을 보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도 이 정도로 불 피우기를 못할 줄은 또 모르셨을 거다.

그 뒤론 어떻게 되었냐고요?

지금 기억으론 조금씩 조금씩 실력이 나아진 것 같다. 번개탄도 처음엔 교실 구석에 몇 개씩 사 두었는데 그 다음부턴 그냥 있는 재료로 피웠던 것을 보면... 근데 그 다음해에는 근무하던 학교에서 화목 난로를 다 폐기해서 버리고 석유 난로로 바꾸는 바람에 나의 불피우기 실력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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