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시험 #범위 #실수 #초보
역시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다. 초짜 교사인 나는 동학년 회의 때 드디어 '받아쓰기' 시험을 보자는 협의 내용을 들었다. 나로선 열심히 가르친 만큼 아이들의 국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기에 당장 이번주부터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교실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알림장에 이렇게 적어 주었다.
<알림장>
199X년 X월 X일(월)
1. 받아쓰기: 이번주 수요일 국어 시간
- 준비물: 10칸 받아쓰기 공책
- 범위: 1단원
1학년 2학기 때부터 이미 받아쓰기를 해봤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큰 질문 없이 알림장을 받아적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이 아이들이 10개의 문제 중 몇 개나 맞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아이들한테 말했다. "얘들아, 받아쓰기 공부 열심히 해 와, 알겠지?"
드디어 이틀이 지나 수요일이 되었고 우리반은 받아쓰기 첫번째 시험을 치렀다. 아이들은 시험 공책을 나에게 낸 후 하교했다. 나는 식사를 마친 후 교실을 정리하고 나서 아이들이 낸 시험 공책과 빨강 색연필을 준비하고 앉았다. 어, 근데 왜 이러지?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못 봤다. 분명히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라고 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갑자기...' 정도만 적거나 그마저도 못 적고 낸 거다. 무슨 일이지? 내가 뭘 잘못 가르친 건가? 아님 우리반 아이들이 다른반보다 실력이 못한가?
채점을 다 마치고 나서 어떻게 이 처참한 결과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동학년 협의를 한다고 연락이 와서 부지런히 친목 선생님 교실로 갔다.(그때는 학년 협의실이 없어서 보통 티타임이나 학년 회의를 친목 업무를 맡으신 선생님 교실에서 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옆 자리 선생님이
"우리 받아쓰기 문제 만들어서 줘야죠?" 하신다. 나는 말도 못하고 '받아쓰기 문제를 왜 만들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다른 분이 "그래야죠. 국어책에서 제가 단원당 10개씩 골라서 만들게요."라고 하신다. 엥?
아, 나의 큰 실수였음을 알게 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동학년에서 같은 문제를 만들어 공유한다는 것, 그리고 초등학교 받아쓰기는 미리 문제를 만들어 준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집에서 아이들이 미리 공부해 온 후 시험을 치른다는 것... 아, 분명 나도 국민학교 때 받아쓰기를 봤는데(그 기억이 날 리는 없고), 실습 학교 때는 주로 고학년을 해서 받아쓰기 시험 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동학년에서 같은 날 같이 시험을 보는 식이었는데 나만 먼저 보았으니...
이걸 어쩌지? 하다가 결국 1회 시험을 다시 동학년과 맞추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한테 시험 공책을 나눠 주면서 나는 "얘들아, 선생님이 실수로 받아쓰기 문제를 안 주고 먼저 시험을 봤구나."라고 사과를 하지 못했다. 대신 "얘들아, 이번 시험은 연습 시험이었어. 오늘 나눠주는 문제로 다음부터 진짜 받아쓰기 볼 거니까 다음에는 공부 열심히 해 오렴. 알겠지?"라고 말했다.(지금 생각해 보니 많이 미안하다...)
근데 놀라운 건 그렇게 실수로 받아쓰기를 먼저 보았던 것에 대해서나 첫 시험이 연습이었다는 말을 아이들 통해 했음에도 그 어떤 학생이나 학부모님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같은 학급 온라인 메신저가 없어서였을까? 어쩜 속으로는 이 초짜 선생의 실수를 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간 걸까?
어쨌든 다시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던 나의 초짜 시절 실수는 그래도 나를 믿어 주었던, 또는 최소한 그냥 용인하고 넘어갔던 그 당시 학부모님과 우리반 아이들 덕분에 묻혔고 그 묻혔던 것이 지금의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