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5학년을 맡았던 때의 이야기이다.
3월 2째주 금요일에 치러진 반장 선거에서 여자 부반장으로 뽑힌 가영이(가명)는 평소에 말이 없고 내향적인 아이였기에 나와 아이들 모두 가영이가 부반장이 되자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뽑아준 감사 인사를 하라는 말에도 가영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만 인사하고 또 볼이 발그레해졌다.
그 당시는 학급 임원으로 뽑힌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학급의 물품을 지원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다음주 월요일날 가영이의 어머니께서 가영이의 알림장에 메모를 적어 보내셨다.(이때만 해도 외부와 연결되는 전화기는 학년에 한 대 정도만 있어 학부모님과의 비대면 소통은 이런 쪽지 정도였다.)
"선생님, 반장 엄마랑 같이 교실 커튼을 하려고 합니다. 수요일쯤 제가 찾아봬도 될까요?" 얌전하고 둥근 글씨체에서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가영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오시라는 뜻을 전했다.
수요일 방과후 가영이 어머니가 방문하셨다. 공손히 고개숙여 인사하시고는 차 대접도 마다하고 가방에서 줄자를 꺼내 교실 책상 하나를 창틀에 붙여 올라가셨다. 그리고 줄자로 창문의 길이와 폭을 재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급히 책상에 올라가시느라 살짝 바닥에 누운 슬리퍼를 세워 신기 좋게 방향을 돌려 바로놓았다. 그때
"아이고, 선생님! 안 그려셔도 돼요..." 황급히 내려오셔서 슬리퍼를 잡았던 내 손을 스쳤던 가영이 어머니 손이 다시 가지런히 모아졌다. 그때 보았던 가영이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너무 황송해하시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초짜 교사인 내게 말과 글, 행동가지 어느 것 하나 공손하지 않은 게 없었던 그 분의 향기라고 해야 할까?
그 향기는 매달 가영이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통해 이어졌다. 그랬다. 각 계절에 맞춰 노란 프리지아, 장미와 튤립, 안개꽃다발을 보내주셔서 서투른 솜씨지만 꽃병에 예쁘게 꽂아 교탁 위에 올려두고 아이들과 같이 바라봤다. 교실이 환해지는 느낌, 나중에는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소풍이라도 가면 가영이가 부반장이었던 1학기때는 물론이고 2학기 운동회 때에도 가영이 손에 담임 교사인 내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역시나 공손히 두 손으로 건네는 가영이의 모습은 예전 가영이 어머니와 너무 똑닮았었다.
이 이야기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그뒤로도 가끔 좋은 학부모님들을 만나 역시 교육의 3주체는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이지 하는 생각을 가지긴 했지만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점점 옅어지기 때문일까? 그당시 내가 나중에 (학)부모가 되면 닮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해준 가영이 어머니를 만난 게 행운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30년도 더 넘은 지금엔 가영이가 얼마나 잘 성장했을지, 가영이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궁금해진다.
가영이 어머니,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다른 선배 교사들이 교사랑 학부모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라고 하면서 학부모와는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아마 서로가 학생(자녀)를 매개로 이어진 사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사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싶을만큼 향기를 주신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가영이가 얼마나 잘 성장했을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인품이라면 아주 행복한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학부모님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저의 교직 생활을 풍요롭고도 여유있게 만들어 주신 점 깊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