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가 성공한 여자가 되어서 남자를 만나!

#가사 선생님 #뒷바라지 #성공

by lotus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무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그때 내 앞의 대입 시스템은 지금의 대입과 완전 달랐다. 우리 때는 학력고사라는 것을 보았고, 제 2외국어와 (여학생의 경우) 가사 과목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가사 과목에는 애시당초 흥미가 없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독일어를 선택했고 아마 전교생 중에서 독일어를 선택한 학생은 약 4-5명(그때 당시 우리 학년 학생이 약 25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기출문제를 풀어보았을 때 가사 또한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그냥 그 당시 나는 독일어를 너무 사랑했다.(물론 지금 내가 할 줄 아는 독일어는 Ich liebe dich 한 문장 뿐이지만)

어쨌든 우리반에선 나만 독일어를 선택했기에 가사 시간이 되면 나는 혼자서 독일어든 뭐든 알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첫 수업 시간 들어오신 가사 선생님이 "이 반에서 혹시 독일어 선택한 사람 있니?"하고 물어보시더니 내가 손을 들자 "그럼 너는 내 시간에 그냥 너 하고 싶은 공부 해라~"라고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일단 가사 선생님과 나를 제외한 우리반 아이들이 모두 다 수업하는 시간 혼자서 독일어를 하기 진짜 어려웠다. 나는 일단 소리에 매우 예민한데 그렇다고 그 당시 이어폰을 끼고 공부할 정도의 배짱-허락은 받을 수 있었을까?-은 없었기에 책상엔 독일어 참고서를 꺼내놓았지만 내 귀와 신경은 고스란히 가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가 있었다.

게다가 가사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참 독특했다. 일단 50분의 수업 중 약 3~40분은 수업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아는 사람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등등 선생님은 말이 끊이지 않는 데다 이야기까지 재미있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셔서 그런지 아이들은-지금 같음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같이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물론 그 안에 나도 들어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남은 1~20분동안 수업을 하셨다. "얘들아, 그래도 우리 오늘 여기 문제 조금은 풀어봐야지. O쪽 펴 봐봐."

항상 영양가 없다고 치부하던 선생님의 수업 때문에 그렇잖아도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사실 그건 내 집중력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그 날은 하필 아주 유명한 연예인 이야기가 나왔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라서 약간 각색하였습니다... 제발 넘겨짓지 말아 주세요^^;;)


- 선생님이 아는 선배 중에 00대학교 나온 사람이 있거든. 그 선배 언니한테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대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사겼대. CC라고 하지? 근데 그 남자가 너무 가난했거든. 그래서 그 친구가 남자친구를 위해서 알바하고 그 돈으로 등록금도 보태 주고 그랬대. 근데 그 남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법고시를 보려고 했나 봐.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맞아. 친구가 남자를 위해서 뒷바라지를 해 준 거야. 무려 6년 내내 말야. 여자는 그땐 이미 사회인이었으니까 돈은 좀 더 벌었겠지만 얼마나 힘들었겠어. 주변에선 혼기가 찼는데 왜 그 남자랑 결혼 안하느냐고 채근했겠지? 근데 그 남자가 시험에 패스하고 나서 드디어 결혼을 했으니 성공한 줄 알았겠지? 아뿔싸, 남자가 바람을 피웠대. 그래서 아주 유명한 연예인 여자랑 결혼을 했고. 당연히 친구는 이혼 당하고 그동안 쌓았던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었지 뭐야...-


아이고, 여전히 선생님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감칠맛이 난다. 그래도 그게 뭐야, 결국은 남 이야기잖아 하면서 친구들은 가사 교과서를 펴고 나는 다시 독일어 참고서로 눈길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얘들아, 절대로 너네들이 남자를 뒷바라지 해서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하면 안돼. 너네들이 그 노력으로 성공해서 잘난 남자들을 만나야 돼, 알겠니?"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의 깊은 뜻을 몰라보고 폄하했던 점이요. 그때 깨우쳐 주신 것을 제 인생에 크게 적용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제 인생의 1순위는 저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갈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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