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반대
결혼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우리 남편과 결혼한 것을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익명의 자리를 빌려 남편 자랑을 해 보자면 일단 나와 달리 생색을 내지 않는다. 화장실이 조금 지저분하면 샤워하러 들어간 자리에서 닦고 나오지만 아무 말을 안 한다. 무슨 일을 해도 뭔가 칭찬이나 우쭐함을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어떤 점에 대해서 불편한 것이 있어도 여간해선 그 점을 고치라고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혼 부부는 치약 짜는 방법 가지고도 싸운다는데 그런 거라면 우리는 벌써 이혼을 했을 거다. 내가 치약 가운데를 툭 짜서 사용하면 남편이 다시 아래부터 짜고 정돈을 하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정하다. 예를 들어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바깥 외출을 할 때 주차하기도 안 좋고 대중교통이 좋을 것 같아 버스 타고 간다고 하면 자기 시간이 괜찮으면 웬만하면 내려다 주거나 역시 시간이 되면 데리러 오기도 잘 한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가는 게 아니더라도 그냥 자기가 시간이 되면 그러고 싶다고 한다. 나 외에 다른 가족을 위해서도 이런 라이드를 잘 해 준다. 또한 차분하고 쉽게 흥분하지 않아서 자주 활화산처럼 분출해대는 나를 진정시켜 줄 때가 많다. 마치 성난 황소를 다루듯 "워워~"하면서 내가 화난 이유를 잘 들어주고 주로 내 편을 들어준다. 공감해 주고 힘들 때 많이 위로해 준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 많은 연애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금사빠 체질이라 남자를 보는 눈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에 비해서 과분한 남편을 만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남편을 처음 만나서 연애를 시작하여 엄마가 내 연애를 눈치채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었다. 엄마는 내가 만나는 남자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고 나는 또 나대로 내가 만나는 이 사랑스러운 남자에 대해 술술 말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갑자기 결사반대를 외쳤다.
왜? 도데체 왜? 왜 반대하는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남자를 어떻게 또 만나라고? 엄마의 이유나 들어보기로 했다.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드시는데요?
엄마는 평소보다 훨씬 논리정연한 이유를 들어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싫다고 했다. 즉 홀어머니, 여동생(대학생)과 사는 게 싫다.
둘째, 시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점이 싫다고 했다. 아픈 것은 어쩌면 유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셋째, 가난한 게 싫다고 했다. 사실 가난한 건 사실이었다.
넷째, 키가 작고 못생겨서 싫다고 했다.(글쎄, 나보다 크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여자 키 치곤 꽤 큰데... 그리고 못생기지 않은 것 같은데, 적어도 내 눈엔...)
다섯째, 직업이 싫다고 했다. 엄마가 원하는 사윗감 직업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그때도 그 후에도 물어보지 못했다.
여섯째, 나는 그때 당시 벌써 석사였는데 남친이 아직도 학사인 게 싫다고 했다.
일곱째, 남편의 직장이 싫다고 했다. 혹시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단다. 사실 더 말하자면 더 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따지기도 싫었다.
그래도 돌아서면 엄마의 말이 반은 이해되고 반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랑 병으로 돌아가신 것, 그래서 아직 가난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가난한 것은 우리 둘이 같이 벌면 충분히 아주 부자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직업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옮길 계획과 가능성이 높았고, 공부(석사)는 원하면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와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같이 살면서도 대화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직장과 집이 워낙 멀다 보니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역시 어둑어둑할 때 집에 들어가 내 방에만 박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체중이 10킬로그램 넘게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옷을 사기보다는 옷핀으로 허리춤을 조여서 입고 다녔다.
결혼은 결국 이 남자랑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너무 사랑하고 정말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도 안되어서 엄마가 말했다.
"그때 엄마가 말했던 거 틀렸었어. 최서방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너 결혼 잘 했어~"
그 말이 너무 기쁘고 감개무량했다. 다 알고도 장인장모님께 최선을 다해온 남편은 처음부터 별 문제가 없었다.
아, 그리고 결혼 후에 달라진 게 많다. 결혼 전과 직후엔 정말 가난했던 게 맞는데 지금은 그냥 밥 먹을 정도로는 산다.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욕심은 끝이 없고 돈도 지나치게 많으면 걱정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직업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석사, 미국대학 석사를 추가로 마친 후 박사까지 취득했다. 이만하면 엄청나게 노력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씩은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을 때나 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나의 엄마 생각을 하면 그 당시 엄마가 결사반대를 했던 마음이 100% 이해가 된다. 아무리 좋아도, 남편도 남이고-가끔은 나도 내 자신이 밉고 싫을 때가 있는데 남편이야 뭐-우리 딸이 예전의 남편같은 조건의 남자를 만약에 데려온다면 내가 흔쾌히 "오케이! 미래를 보니 괜찮은 사람이네~"라면서 허락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결정을 좌우하는 걸까? 나의 경우 좋아하는 마음이 안 좋았던 상황을 이긴 것이었지만... 이제야 엄마의 그때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제야...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 결혼 2X주년을 기념하며 쓴 글을 옮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