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선생님아~

#자폐성발달장애 #우리반귀염둥이

by lotus




몇 년 전 있었던 일이다. 1학년을 맡게 되어 입학식 준비를 하면서 각 반 명단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우리 담임 교사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혹시 이번에 통합 학급 맡아 주실 분 계신가요?"

부장님의 말씀이었다. 통합 학급이란 장애 등록이 되었거나 특수 교육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속한 일반 학급을 뜻하는데 우리 1학년 선생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게 특수교육 학생의 힘듦 정도에 따라 무척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 쉽게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냥 우리 뽑기로 할까요?" 역시 시원시원한 부장님의 제안에 만장일치를 보고 나서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봉투를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다. 나도 손을 뻗어 봉투를 가져와 그 안의 명단을 살펴 보았다. ㅋㅋ 우리반이로구나!

그렇게 건영(가명)이가 우리반에 왔다. 입학식 준비를 하면서 몇 번 건영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비록 특수 선생님으로부터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들었으나 직접 어머니 입으로 자세한 상태를 듣고 싶었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래포를 잘 형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건영이 어머니 왈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죽어도 안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살살 구슬리면 잘 하는 편이라고' 했다. 입학식 날 다른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발 돌발 행동 없이 잘 해 주길 바라면서 입학식을 준비했다.

입학식 날 건영이는 기대보다 훨씬 잘 했다. 이름이 불리우고 엄마가 뒤에서 살짝 밀어주니까 카펫 깔린 길을 걸어와 이름표 목걸이를 목에 건 후 6학년 언니 손에 이끌려 자리에 가서 앉았으니 특별하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교실로 등교하는 아침이 왔다.

모든 아이들이 다 들어온 걸 확인했는데 건영이 자리만 비어 있었다. 복도에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건영이 어머니와 건영이가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건영이 어머니는 교실에 들어가기 싫다는 건영이를 교실에 들어가라고 구슬리기도 하고 살짝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들여보내려고 하고 있었으나 마치 쇠뿔 고집인지 건영이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버티는 중이었다. 어머니한테 일단 내가 알아서 들여보낼 테니 그냥 집으로 가시라고, 최소한 건영이 눈에 띄지 않는 1층으로 내려가시라고 했다. 당황해하던 건영이 어머니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한두번 뒤를 돌아보더니 계단을 내려가셨고 건영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건영이는 뒷문에서 꽤 떨어진 벽에 등과 엉덩이를 붙이고 서서-뭔가 이렇게 붙어 있는데 나를 끌고 들어가겠어? 하는 표정으로-나를 쳐다 보았다.

"건영아, 우리 교실에 들어갈까?"

"아~니~야, 괜~찮~아..."

이렇게 두어 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순간 속으로 웃음이 났다. 상대방의 제안을 나름 공손하게(?) 거절한 거다. 마구 울거나 바닥에 구르거나 하지 않는 아이 모습에서 다음번 제안엔 내가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건영아, 지금 봐봐. 친구들 다 교실에 들어갔네? 저기 봐. 준형이도 교실에서 건영이를 기다리는데?"

"준형이?"

"그래, 준형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건영이 보고 들어오라고 하는데?" (물론 다른 이야기도 많이 했다... 건영이가 안 들어가도 선생님은 이제 친구들 있는 교실에 들어가야 겠다, 건영이 엄마는 아까 가셨네 등등...)

자 갈까? 하는 듯 내민 내 손을 1-2초 보더니 건영이는 나를 따라 교실에 들어왔다. 건영이의 자리를 알려주고 막 앉히려는 순간 특수 실무사님이 불쑥 들어오시더니 "어, 건영이 교실에 벌써 들어왔네? 아까 엄마가 걱정하던데?"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마 건영이 어머니가 집에 가시기 전에 특수반에 들리셔서 말씀한 모양이다. 아무 문제 없이 교실에 잘 들어온 건영이를 칭찬하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는 교실에 잘 들어왔다.



건영이는 수업의 절반을 우리 교실에서 주로 통합교육과정과 창체 시간 공부를 했고, 국어와 수학, 특별 프로그램은 특수학급에서 공부했다. 학교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해서 엄청나게 걱정했던 어머니도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하고 이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서 나도 나름 보람이 있는 하루하루였다. 가끔씩 또래 아이들도 귀엽다고 할 정도로 귀여운 말투와 타고난 애교까지 부릴 때면 역시 특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영이는 우리반 비타민이에요~"라는 말씀이 기억이 나곤 했다.

가끔씩 무언가 자기가 한 일을 내게 칭찬받고 싶을 때는 다른 아이들이 줄 서 있을 때 자기도 스케치북 등을 들고 와서 내게 보여주면서 "나,(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김건영이 했어!"라고 말하거나 좋아하는 친구를 안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앞선 행동은 마구 칭찬하면서 강화를 시켰지만 뒤의 행동은 자칫 그 친구가 싫어할 수도 있는 행동이라서 조심시키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교육했었다.



역시 1학년은 똥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유치원에선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 나는 건영이가 수업 시간에 "오줌 마려~쉬쉬"라고 말하면 얼른 다녀오라고 보내주곤 했다. 근데 그 날은 앞춤을 감싸쥐면서 역시나 급한 얼굴을 보이길래 다녀오라고 하고 계속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건영이가 안 오는 것이다.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학생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건영이였다. 큰 것을 보았는데 뒷처리를 잘 하지 못해서 바지와 팬티를 무릎 아래까지 내린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일단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라고 한 후 휴지로 내가 뒤를 닦아 주었다. 다행히 옷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비누칠을 해서 손을 잘 씻으라고 하고 그 옆에서 나도 손을 씻었다. 내가 오기 전 나름 시도를 해 본 것 같은데 말끔하지가 않았는지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한 번 더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도 실수는 하지 않고 나름 자기가 처리하려고 애썼기에 그 점을 칭찬해 주면서 역시 가정에도 연락을 했다.



아침 자습 시간-그래봤자 수업 전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라 교실에 들어와서 겉옷과 가방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잠시 보는 시간이지만-에 건영이는 주로 공룡이나 곤충이 나오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처음과 달라진 건 담임 교사인 나에게 자꾸 공유해 주고 싶어하는 거였다. 그날도 자리에 앉아서 1-2번 "선생님"을 불렀는데 나는 짐짓 모른 체 하고 오늘 할 일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OOO 선생님아~" 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ㅋㅋㅋㅋ 웃음이 나서 혼났다. 물론 그렇게 선생님 이름을 부르면 안된다고 지도하긴 했지만 친구 이름 부르듯이 선생님의 이름 세 글자를 넣어 불러서라도 선생님의 관심을 끌고 선생님한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한다는 것이 사회성의 기본 첫걸음이라고 느껴져서 마음이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1년간 건영이와의 즐거운 시간이 지났다. 그 다음해엔 내가 2학년을 하지 않았기에 건영이는 당연히 다른 선생님이 맡아 주셨다. 가끔 윗층에서 내려오던 건영이가 나를 보고 반갑다고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든다. 물론 나도 똑같이 인사를 해 주면서 말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야지!" 그럼 내 말을 따라하면서 싱긋 웃는다.



건영아, 더욱 쑥쑥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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