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1학년 때요...

#교생실습#1학년#실수

by lotus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이니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그때와 많이 달라져있으리라.






나는 그때 교생실습학교에 근무하면서 1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다. 5월부터 교대 4학년 학생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배치받아 실습을 시작했다. 4학년 실습생들은 1학기때 수업실습을 4주동안 하고 돌아갔다가 2학기때 다시 같은 학급으로 와서 2주간 실무실습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수업실습이 진행되는 5월말이었다.

지금 솔직히 얼굴이나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때 우리반에 들어왔던 여학생은 첫날부터 목소리도 크고 성격이 외향적으로 보였다. 1학년 꼬맹이들의 말도 안되는 질문에도 밝은 미소로 답해주는 등 한눈에 봐도 성격 참 좋아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반에서 또래 여학생들보다 야무지고 똘똘해서 무슨 활동이든지 주도권을 쥐는 여학생 명희(가명)가 있었는데 수업이든, 교우관계 등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날은 명희가 아침부터 뭔가 침울한 표정으로 등교했는데 무슨 일인지 물어도 그냥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1교시 쉬는 시간이 끝나고 2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음에도 명희 자리가 비어 있었고 아이들한테 물어봐도 아는 아이들이 없었다. 맨뒷자리에서 수업관찰일지를 쓰고 있던 실습생에게 조용히 다가가 "선생님, 잠깐만 앞에 나와서 아이들 지도 좀 부탁해요."라고 말하고 아이들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쉬는 시간 교실 뒷문으로 나가는 명희의 뒷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나서였다. 여학생 화장실 입구에서 명희 이름을 불렀다.

"명희야, 혹시 여깄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맨 안쪽 문이 닫혀있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걸어가 손으로 문을 살짝 밀었더니 안에서 잠겨 있었다.

"명희야, 여깄니?" 재차 묻자 안에서

"네...선..생님" 분명 명희의 목소리였다.

그때 든 생각은 아, 이 아이가 실수를 했나 보다. 였고 내 생각은 맞았다. 아이는 아침부터 배가 아팠었고 1교시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아마 가면서 지리는 바람에 교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난감했다. 아이를 얼른 씻겨주어야 겠구나 생각하고, 머릿속에선 고무장갑이나 비닐장갑을 끼고 실수한 것을 닦아주고, 물티슈로 뒤처리한 후 아이 옷은 대충이라도 빨아서 비닐에 넣어 보내는 나만의 매카니즘이 휘리릭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여벌 옷이 없는데 누구한테 옷을 빌리지? 내 체육복 바지라도 입혀 보내야 하나? 그때 안에서 아이가 "선생님, 울엄마한테 전화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명희는 학교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내가 알기론 어머니가 전업주부셨던 게 기억이 나서 나는 얼른 명희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에 계셨던 명희 어머니는 깜짝 놀라 전화를 받은 후 얼마 안되어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전화를 마친 나는 명희에게 엄마가 오실 거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안심시킨 후 빠른 걸음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학습지를 하던 아이들은 교생선생님의 지도 하에 비교적 조용히 있었다. 교생 선생님은 살짝 걱정스런 눈길로 명희를 찾았는지 물었고, 나는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교탁으로 돌아갔다. 그때 어떤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근데 왜 명희 안 와요?"

"어, 명희는 지금 심부름 갔어."

"언제 갔어요? 아직도 안 와요?"

"응, 선생님이 제일 멀리 있는 6학년 교실까지 보냈거든. 너희들 지난번에 6학년 교실 가봤지? 엄청 멀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교실 뒷문 유리쪽에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명희 어머니가 얼굴을 가까이 대셨고 나는 얼른 앞문으로 나갔다.

"명희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화장실도 치웠어요. 그리고 오늘은 명희 아무래도 집에 데리고 가려고요..."

"네, 그러세요, 얼굴이 불편해 보였는데 말을 안해서 배가 아픈 걸 몰랐어요."

명희 가방을 어머니께 전달해드리고 들어오자 아이들은 또 재잘댄다.

"선생님, 명희 왜 가요?"

"음, 심부름 너무 많이 해서 다리 아프다고 조퇴한대."

"아, 그래서 엄마가 왔구나. 명희 다리 아파서.."

이렇게 작은(?) 해프닝은 끝났고 아이들도 다 하교했다. 실습생은 방과 후 전체 실습생 대상 연수를 마친 후 여느때처럼 4시쯤 교실로 돌아와 오늘 지도교사의 수업 후기 및 본인 수업 반성 등을 한 후 실습록을 작성하고 귀가한다. 이날도 교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실습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 아까 감동했었어요."라고 대뜸 말해서 무슨 말이지 했는데 실습생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실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만 해도 진짜 말도 애들 앞에서 잘 못하고 그랬거든요."

"선생님이요?" 평소의 모습으로 보아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어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네, 키도 작고 발표도 잘 못하는 아이였는데, 아까 명희처럼 화장실에서 큰 걸 실수한 거에요. 그때 아이들이 제가 실수한 걸 선생님보다 먼저 알고 마구 놀리고 선생님도 막 짜증내면서-애들도 많았으니 더 힘드셨겠죠-제 뒤처리를 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창피하고 죄책감 땜에 학교를 정말 그만 다니고 싶더라고요.근데 아까 선생님이 명희가 멀리 심부름갔다고 해 주시니까 애들이 명희 실수한 걸 모르게 해 주신 거잖아요. 그리고 조퇴한 것도 배려해 주시고요... 옛날 제 1학년때 생각이 났어요."

그당시의 소극적이고 부끄럼 많던 여자 아이로 돌아간 듯한 실습생은 입술을 꾹 누르면서 이야기를 마쳤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교대에 왔어요."

"나도 아까 선생님 없었으면 이리뛰고 저리뛰느라 아이한테 짜증냈을 수 있어요. 아마 일부러 티내신 걸 아닐 거라 믿지만...어쨌든 선생님은 정말 힘들고 창피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견뎠어요?"

그 다음 이야기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실습생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날의 실습 협의는 그렇게 끝났다.








나도 내가 1학년 입학했을 때 생각이 난다. 하늘처럼 높아보이던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모습에 환상이 와르르 깨진 것 같던 기억, 내 뒤의 아이가 장난 반 심술 반으로 내 가방을 칼로 찢었어도 선생님한테 말도 못 했던 것, 아이들이 조금만 놀려도 눈물만 흘리고 대응도 못했던 내 어린 모습이...나도 그때 실습생과 별다른 점이 없었구나,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조금만 배려했다면-그 당시엔 배려라는 말 자체가 없었던 같으니 그냥 그 입장을 생각해 주었다면-그 기억의 씁쓸함이 좀 덜했을 텐데.

어쨌든 그날 나의 행동을 통해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나중에라도 이런 교사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니 나로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실습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내가 직접 치워주지 않았던 것이 계속 마음에 남기도 하고(명희와 명희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또 한편 명희 입장에선 선생님보다 엄마가 치워주신 게 훨씬 편했으리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글을 읽고 진짜 오래 전 초등학교 1학년 때 모습을 떠올려 보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그때의 나를 위로할 일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보면 어떨까?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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