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딸

- 아이의 속도와 엄마의 속도가 달라서 겪었던 미국 에피소드

by lotus

* 이 글은 2010년도에 적었던 글임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 아이 이름을 일부러 그 당시 영어 이름으로 적습니다. 아이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조치임을 양해 바랍니다.


아이의 미국 초등학교에서 겪었던 일 중 한가지다.

남편은 학교 가고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후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청소기를 돌리는데 성능이 안좋아서 그런지(구세군 샵에서 사 온 중고) 가장 강한 세기로 켜고 카페트를 청소하느라 아마 학교에서 온 전화를 못 받았었나 보다.

한 숨 돌리고 나서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는 찰나였는데 전화소리가 나길래 받아보니-사실 영어 울렁증이 있어 왠만하면 받고 싶어하지 않았으나~-익숙한 목소리, 아이들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미스터 몰리나(Mr. Molina)셨다. 교장 선생님은 내가 영어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서 아주 천천히 말씀해 주셨다. "미시즈 최(아이들이 최씨이니 내 이름도 무조건 최씨가 된다;;), 지금 에이미(우리 딸)가 많이 아픕니다. 학교에 와 주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나는 얼마나 아이가 아프면 연락이 왔을까 싶어서 허둥지둥 하면서도 전자사전을 챙겼다. 혹시 말이 안통하면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차도 없고-차는 남편이 학교 갈 때 타고 갔다- 보통 학교까진 걸어서 10분 정도인데 마구 뛰느라 아마 5분 정도 후에 학교에 도착했을 것이다. 땀을 흘리면서 교문을 들어서 행정실 문을 노크하니 행정실 직원분이 나를 알아보고는 바로 옆 방 교장실로 안내해 준다. 여긴 이미 한번 들어가 보았던 곳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쓸 예정이다.


내 딸 에이미는 교장실 겸 보건실인 그 곳 침대 한끝에 앉아서 나를 보더니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에 깔끔하게 입고 갔던 티셔츠는 아이의 토사물과 그걸 닦아준 흔적으로 절반은 젖어 있었고 아이 얼굴 또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한테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아파서 토했다."라고 답했고 나는 지금은 괜찮은지, 아까보다 괜찮아졌는지, 왜 그런 것 같은지를 물어보았다. 그때 옆자리에 서 계시던 교장 선생님이 "아이를 집으로 조퇴시키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셔서 속으로 깜짝 놀랐던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그냥 조금 토한 것 같은데 이깟(?)일로 조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한국식(?) 사고방식에 젖어서 그랬던 것 갔다.


워워~ 이미 밝혔지만 이 일은 2010년도 10월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아이가 조금 아프면 학교나 학부모가 조퇴를 쉽게 시키지만 이 생각은 국민학교 6년 정근상, 중고등학교 6년 개근상을 받았던 근면성실한(?) 그당시 나의 그 당시 것이었음을 밝혀둔다.


그래도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하기로 하고 약간의 미련이 남긴 했지만-그때만 해도 에이미가 괜찮아보였기에-아이 가방을 챙겨서 아이와 함께 집에 왔다. 다행히 학교에서 출발할 때 남편에게 연락했더니 남편도 빨리 올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집에 도착한 후 조금 있다가 남편도 도착했다.


집에 와서 그런지 아이는 점점 안정을 찾았고 좋아하는 '스쿨버스 시리즈'를 디브이디로 보면서 잘 놀기에 남편은 이번에 코스트코에 가서 부식을 사 오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이때만 해도 아이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는 잘 놀더니 갑자기 다시 토하기 시작했는데 아까 집에 오자마자 먹였던 한방 소화제까지 토한 후 더 이상 먹은 것이 없다 보니 노란 물까지 토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이 열을 재 보고 남편한테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안 받는 거다!!

아이는 통증에 괴로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못해 검은 자위가 돌아가기까지 하니 나로선 너무 놀랍고 공포스러워 어찌 해야 할지 몰라했다. 지금 연락이 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다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신 한인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목사님이 놀라서 말도 잘 못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우리집까지 와 주셨다.


목사님은 우리 모녀를 태우고 'Santa Rosa Memorial Hospital'로 달려가셨다. 나는 자꾸 몸도 못 가누는 딸을 보면서 진짜 많이 울었다. 이 먼 곳 산타로사까지 와서 이렇게 아프게 해서 미안해, 딸아... 제발 기운내. 병원에 금방 갈 거야. 제발 정신차려... 눈 좀 떠 봐... 제발 제발...


병원까지 가는 길은 그닥 멀지 않았지만-지금 찾아보아도 6~7분 정도로 나옴- 나로선 영겁같은 시간이었다. 이대로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정말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목사님이 나를 진정시키면서 응급실 앞까지 같이 가 주신 후 접수를 해 주셨다. 아이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길래 "아이가 토했어요, 아주 많이요..."라고만 대답했고-그것도 눈물 흘리느라 그나마 못하는 말(영어) 더 못했으리라-아이는 바로 응급실 안의 침대로 옮겨졌다.


에이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체온을 재고 소변검사, 피검사를 했고 약 한 알을 처방받아서 바로 먹었다. 약을 먹은 후 아이가 많이 좋아져서 잠이 들었고 그때서야 헐레벌떡 남편이 뛰어들어왔다. 그동안 연락을 받지 않는 남편한테 가졌던 화를 낼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아이는 병원의 조치 덕분인지 얼굴색도 평소대로 돌아오고 간호사가 준 분홍색 인형을 가지고 놀 정도로 회복이 되어 있었다. 목사님도 남편을 보더니 교회로 돌아가셨다. 어찌나 감사한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막막한 상황에서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이다.


의사가 남편에게 한 말로는 "아까 한 검사 결과 상으론 별 문제가 없고 바이러스 때문에 그렇게 토한 것 같으니 이후 처음 24시간과 2-3일간은 음식을 조심하라."고 했단다. 우리에게 준 서류에는 Gell-O, 바나나, 게토레이 등을 섭취하라고 해서 사서 가져갔다. (*Gell-O는 미국인들이 즐겨먹는 젤리 디저트 같은 것인데 말랑말랑하면서 달달해서 어른 아이 다 좋아하는 것 같다.)


다행히 여기 오기 전 한국에서 1년짜리 해외 의료보험을 든 덕에 우리는 보험료로 충당해서 돈을 따로 지불하지 않았다. 한국과 다른 점이 한국에선 실손일 경우 일단 피보험자가 지불하고 나서 돌려받는 방식이라면 여기는 보험사에서 바로 병원으로 지불해 주는 시스템인 것 같다. 어마어마한 미국 의료비를 생각하면 참 다행이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 다행히 그 이후에는 크게 아프거나 토하는 등의 증세 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다. 그 날 내가 썼던 일기를 찾아 보니 이렇게 적어 놓은 구절이 있다.


** 아이가 오늘 왜 그렇게 토하고 아팠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밥을 유난히 천천히 먹는 딸한테 내가 아침에 유독 "빨리 먹어야 돼, 다 먹고 가야지..." 이런 식의 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아이가 밥 먹을 때 워낙 시간이 걸리다 보니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티셔츠 한 팔 끼우고 또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머리 묶어 주고... 그렇게 아이를 닥달했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엄마의 조바심 때문에 아이가 오늘 엄청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 미안하다. 딸

아이가 여기 온지 이제 2달이 조금 지났다.(우리가 온 게 8월 10일, 학교에 입학한 게 8월 18일). 말 한 마디 통하지 않고 자기랑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들 틈에서 그간 겪었던 온갖 스트레스가 이렇게 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미안해, 딸. 그때 정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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