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사가 되려면 통번역대학원을 꼭 가야 했다. 따로 자격시험이 있어 대학원을 안 가도 ’동시통역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체계적으로 훈련을 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쿠웨이트까지 다녀왔음에도 ’어떤 언어‘로 동시통역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사실 쿠웨이트 장학생에 지원하기 전,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영어 준비를 해서 통대 한영과 시험을 쳐야 하나?’ 그럼 굳이 쿠웨이트에 갈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나 혼자 끙끙대 봐야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으신 교수님 여러 분들께 상담을 청했다. 내가 아랍어-영어통번역 이중전공자였던 게 다행이었다. 양쪽 분야 교수님들을 모두 알았으니까.
그런데 모든 교수님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아랍어를 왜 포기하나? 이제 와서 놓기 아깝다.” 어떤 분은 한-영-아과로 두 언어 동시 지원을 해 보라고 하셨고(만약 그랬다면 내 대학원생활은 2배가 아니라 10배로 힘들었겠지..? 아이가 둘이 됐을 때처럼..ㅠ), 또 다른 분은 그렇게 영어 쪽에 미련이 남으면 차라리 통대를 한 번 더 다니라고까지 하셨다.
그래서 아랍어를 놓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쿠웨이트에 다녀온 뒤의 나..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믿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언어에 감이 있다’는 소리를 항상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에는, 히라가나만 아는 일본어 왕초보에서 (방학 때의 독학으로) 개학 후엔 원어민 선생님과 회화가 가능한 학생이 되었다. 제2외국어 중국어 시험을 치면 항상 만점에 가까웠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언어의 마술사’나 ‘언어천재’라 불렀다. 대학생 때에는 영어통번역과 교수님께 "나얀이는 미국 오래 산 거 아니었어? 한국어를 잘하네?", 중국어과 교수님께는 "어릴 때 중국 얼마나 살다 왔어요?"라는 말을 들었었다. 대학원 때에도 교수님이 "나얀이는 언어에 확실히 감이 있어."라고 해 주셨었다. 똑같은 말을 입사 후에 상사들에게서도 들었다. 나는 아랍어/영어 (+ 업무분장에 없는 온갖 잡일) 스페셜리스트임에도, 일본 업체와 미팅을 앞두고 일본어로 된 명함을 가져와서 내게 묻는 분도 계셨을 정도다.
대학원 입학과 입사는 나중의 일이지만, 어쨌든 그간의 경험은 저 시기의 나에게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더 아랍어를 놓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쿠웨이트에 다녀와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랍어가 많이 늘지는 않았다. 물론 그전보단 훨씬 늘었지만, 나는 은연중에 아랍어가 최소한 내 영어 실력만큼은 되길 바라고 있었던 거였다. 아니, 그간 영어에 투자한 세월이 있으니 양심상 영어의 발끝정도는 따라가는 실력이 되길 원했다. 그땐 몰랐다. 어릴 때 접한 외국어와 성인이 되고 접한 외국어는 동일한 수준이 되기 어렵다는 걸. 후자의 경우 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살다 올 게 아니라면, 아주 오랫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어릴 때부터 접해온 외국어를 따라잡긴 힘들다는 걸.
저걸 미리 알았더라면 고민을 덜 했을까? 쿠웨이트에서 돌아와 입학 원서 접수가 한 달여 남은 기간에도 '영어냐 아랍어냐'를 고민했었다. 결국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내 최선이었다. 지금의 실력으로 시험을 쳐 보자. 그리고 아랍어에 집중하자.
나는 결국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갔고, 성적입학장학금을 받았다. 1학기가 끝날 무렵 교수님이 성적 공개를 하셔서 내가 수석 입학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그간의 걱정이 다 기우였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걱정은 대학원에서 나의 성적이 어떻든, 어떤 성과를 내든 간에 계속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며, 내가 처한 현실과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자각하는 나침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통번역대학원 입학으로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는 꿈에 훨씬 가까워졌다. 하지만 통대 입학이 곧 동시통역 자격증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고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