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낮엔 58도를 찍는 나라
'아랍어 전공자라면 한 번쯤은 아랍 땅을 밟아봐야지'라는 생각으로 가게 된 쿠웨이트. 지리적으론 미국만큼 멀지 않았지만, 심적으론 훨씬 멀고 낯선 곳이었다.
쿠웨이트 대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기숙사가 생각보다 좋았다. 방 두 개당 화장실 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 옆방의 '배쓰룸메이트' 언니와 잠깐 인사를 한 뒤 혼자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다시 외국 땅을 밟아 봐서 설렜다. 학교 건물 안에도 곳곳에 야자수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건물도 나름 크고,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근데.. 왜 사람이 없지?
나는 원래 영어를 못하진 않았지만, 미국에 있던 1년 사이 스피킹이 확 늘었다. 일단 표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유창성도 좋아졌다. 그게 다 '1년 안에 끝장(?) 보고 가야지! 아웃풋이 빨리 나와야 해!'라는 생각에, 미친 듯 밖으로 나돌며 사람들을 만났던 덕분이다. 한국에서 나는 절대 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공부는 무조건 혼자, 방에서 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도 하다가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 같아 관뒀다(이건 좀 후회된다. 동아리 활동을 접는다고 그 시간에 공부나 생산적인 활동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ㅠ).
그런 내가 미국에서는 '파티광'소리를 들었고, 파티를 안 가는 날엔 도서관이나 union(학생회관) 테이블 죽순이었다. 그렇게 해야 말 한마디라도 더 한다는 생각에.. 기숙사에선 정말 잠만 잤다. 아침 일찍 나와서 한밤중에 들어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영어) 공부도 한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쿠웨이트에서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현지에서 아랍어를 배우려면, 당연히 현지인을 만나야지!
또 아랍어의 특성상, 공식 석상이나 교과서, 미디어에서 쓰는 '표준어'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방언)'가 완전히 달랐다. 나의 목표인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갈 때는 어차피 표준 아랍어가 중요하겠지만, 걸프 아랍어를 배우면 앞으로 업무를 할 때 훨씬 좋을 것이었다. 나는 쿠웨이트에 온 만큼 걸프 방언을 배워 가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운 표준어와 달리 방언은 책을 통해 배울 수가 없었다. 특히 걸프 방언은 더 그랬다. 이집트나 시리아 쪽 방언과 달리, 걸프 방언에 관한 책이나 교재는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쿠웨이트엔 사람이 없었다. 뭐지? 다들 어딨는 거지? 그럼 난 아랍어는 어디서 배워야 하지..?
'그냥 미국처럼 다니면서 친구들 만나면 되겠지 뭐' 하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안 그래도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인 내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알고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 아무도 학교에 오지 않은 거였다. 새벽부터 와서 짐을 풀었던 나의 체감 시간은 오후 3신데, 실제론 오전 8시였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 그림자라도 찾겠다고, 시뻘게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녔다(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말 그대로 작열하는 땡볕에 적응하기까진 몇 달이 걸렸다..). 시간이 좀 지나니 학생들이 나타났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일단 여자인 내가 남자에게 불쑥 가서 말을 거는 건(그게 무슨 말이든 간에) 이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이상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은 아랍어로 말을 걸고 아랍어를 배우려 하는 동양인을 신기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자국의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필리핀인들과 한국인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좀 하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다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던 건, 내가 현지어를 아예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거다. 영어를 배우던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영어론 웬만한 말은 다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주워듣고 흡수하면 되었다. 그리고 주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의 뉘앙스 차이를 묻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걸프 방언은.. 완전히 새로운 언어나 다름없었다. 한국 학교에서 배운 표준 아랍어는 쿠웨이트에서도 교과서 속에만 있었다. 뉘앙스를 묻기는 커녕, 신발을 가리키며 '이건 걸프 아랍어로 뭐라고 해?' 하는 질문밖에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 본인의 시간을 쪼개 가며 걸프 아랍어를 기초부터 가르쳐줄 만한 친구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줄기 빛은 있었다. 어학당에서 갑자기 걸프 방언 수업을 해 주시는 교수님이 생겼다. 근데 또 마음이 변하셨는지 휴강을 자주 때리시더니 결국 몇 강 안 하고 강의가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때 배운 표현들이 정말 유용했다. 친절한 친구들도 만났다. 그때는 한류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꽃보다 남자'의 영향으로 한국을 아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런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 주고, 집에 초대도 해 주고(아랍에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이 친구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쿠웨이트에 온 손님'이었다.), 아랍어도 가르쳐줬다. 걸프 아랍어에 집착(..)하는 나에게 '걸프 아랍어 사전'이라는 얇은 책을 선물해 준 친구도 있었다.
덕분에 학교(어학당) 수업 때 배우는 표준어 외에도, 걸프 방언도 조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걸프만, 특히 쿠웨이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좋게 보면 여유롭지만, 보통의 한국인 기준에서 보면 속 터진다..) 아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보 5분 거리라도 무조건 차를 타는 그들도, 그만큼 뚜벅이들을 위한 보도가 잘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날씨가 너무 덥고 햇빛이 너무 강하다 보니 뭐든 천천히 하는 습관이 들었겠구나. 차 없는 나야 어쩔 수 없이 걷지만, 차가 있다면 걸을 날씨가 아니겠구나(귀국 직전인 7월에는 한낮의 기온이 58도까지 올라간 걸 보고 왔다.).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건 언어를 하는 것 만큼이나, 아니 어떨 땐 그보다 더 중요하니까.
쿠웨이트에 머무른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쿠웨이트란 나라가 있다는 건 알았으려나?
기숙사(그것도 여자 기숙사만) 통금은 9시에, 남자랑 여자는 도서관에서 같이 앉아서도 안 되며(단, 약혼한 사이임이 증명되면 가능), 무릎 위로 올라가는 하의는 입으면 안 된다는 나라.. 하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기꺼이 집에 초대해 주고, 카페에서 익명으로 음료를 보내 주기도 하고, 아랍어 배우는 걸 알고 일부러 말을 걸어 주기도 하는 사람들.
델만큼 뜨겁기도 했지만 따뜻한 기억도 많았던 쿠웨이트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다. 다시 정제된 아랍어 공부에 매진할 때였다. 당장 한 달 뒤, 가을이 오면 통번역대학원 원서 접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