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만큼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었던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나의 최대 고민은 ‘대학에서 어떤 외국어를 전공해야 할까’였다. 사실 어릴 때부터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통역사가 되는 꿈을 꿔 왔지만,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 그때까지 내가 배운 외국어는 이미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그래도 이때까지 꾸준히 배워 온 영어를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야지. 그럼 깊이 있는 통역을 할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다음 날엔 ‘아니지. 영어는 굳이 통역사가 아니라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나를 차별화할 다른 언어가 필요해’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했다. 친구들이 보기에 나는 이미 ‘통역사’라는 뚜렷한 길을 정해 놓은, 어찌 보면 운 좋은 아이였겠지만, 사실 어떤 언어를 하는 통역사가 될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내가 고민해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걸 그때도 잘 알고 있었다. 수업 시간엔 수업에 집중하느라 대학과 전공언어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 있었지만, 저녁 자습 때만 되면 항상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적이 많았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각자 공부를 하고(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 짝이 갑자기 부스럭거리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야, 이거 우리 아빠가 지난주에 태국 갔다가 사 온 건데 자습때 먹을라고 일부러 아껴놨다? 니도 좀 줄까?” 엄마 말마따나 돌도 씹어먹을 나이였던 터라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다, 짝의 예쁜 마음씨(!)를 거절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기에 “오~ 그래 고마워!”라며 그 초콜릿 통을 받아들었다.
그때였다. 초콜릿 통을 수놓은 그 많은 외국어들 중에 ‘그 언어’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전체적으로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렁이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데 남은 여백을 봐선 다른 언어들과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이는 것 같은 언어. 제2외국어 모의고사 채점을 하고 나면 반에서 누군가 한 명은 꼭 ‘아 나도 그냥 아랍어나 할까..’라는 탄식을 자아내게끔 하던 대상, 아랍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거다! 싶은 기분에 모든 걸 뒤로 하고 곧장 컴퓨터실로 향했다(필요하면 누구나 교실과 컴퓨터실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여러 번의 검색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아랍어는 (그 당시) ‘블루오션 중의 블루오션’이라는 것이었다. 영어를 전공했다가 대학원을 아랍어 쪽으로 가서 승승장구하는 어떤 분의 기사도 있었다. 나는 아랍어 통역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한 건 아니고, 당시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의 교수님들께 염치 불구하고 메일을 보내서 상담 아닌 상담을 받은 뒤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한번 결정을 한 다음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EBS를 들으며 아랍어를 독학했고, 제2외국어로 아랍어 시험을 쳐서 아랍어과에 들어갔다. 1년간 미국 교환학생을 가서도 학기당 6학점짜리 아랍어 수업을 들었고, 이후 정부장학생으로 석유 부국 쿠웨이트에서도 공부했다. 결국엔 통번역대학원까지 진학해서 한국어-아랍어 동시통역사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의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는 거의 지각변동 수준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천국과 지옥을 오갈 법한 감정 변화도 겪었지만.. 아랍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뿜어져 나왔던 아드레날린은 조금 전의 것인 양 생생하다. 그때 나의 짝이 초콜릿 통을 건네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그 아랍어 글자를 못 봤더라면, 내 인생은 내가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 있었을 것이다. 그 글자를 본 뒤로 (그 당시엔) 그간 해 왔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싹 걷혔고, (이것도 그 당시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뚜렷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따라 계속 걸어온 결과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렇게 사소한 일이 내 미래를 송두리째 바꿨다니.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나는 참 한결같다.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나는 즉흥적이다. 내 미래를 결정할 만한 일을 순간에 휙휙 결정하곤 한다(1n년 뒤의 나도 그런 식으로 승진을 하기로 결정했고, 첫째를 임신한 상태로 시험 봐서 승진하고 아주 먼 도시로 이동 발령을 받았다. 주말엄마의 시작..).
그리고 무대뽀(!)다. 주변에 아랍어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랍어가 어떤 언어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배우기로 했다. 물론 이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하는 정신으로 계속 밀어붙였다(이건 당시 '강철부대'를 보며 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하다가 절망한 내가 가장 많이 되뇌었던 말이기도 하다).
물 흐르듯(?) 지나간 것처럼 썼지만, 사실 아랍어과에 들어간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많은 고민을 했다. 통번역대학원 입학 시험을 몇 달 앞두고도 '지금이라도 영어 준비를 해서 한영과 시험을 봐야 하나..'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를 봐오신 교수님들께 상담도 수차례 받을 정도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더 자세히 써보겠다.
+) 이 글을 쓰다 보니 우리 두 귀염둥이들의 엄마로 살면서 아랍어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꽤 오랫동안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었던, 나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었던 키워드가 '아랍어'였는데, 이제는 억지로 쥐어짜내야 떠오르는 말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이런 '키워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