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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얀 Dec 27. 2023

알파벳 꿈꾸던 6살의 문학소녀


 '영어(외국어)를 잘하려면 영어(그 외국어)로 꿈을 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으신 분?

나는 사실 여러 번 들어봤다. 그중 제일 최근에 저 말을 하신 분은 통번역대학원 우리 과 주임교수님이었다. 본인은 박사과정 시절 아랍어로 꿈을 꾸셨다고.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에서조차 외국어가 나올 만큼, 그 외국어에 푹 빠져 살아야 아주 유창하게 잘하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아랍어로 꿈을 꿔 본 적은 없다. 아니, 정부장학생으로 쿠웨이트에 가 있던 시절 잠깐 그런 꿈을 꾸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근데 그때는 하루하루가 아랍어나 영어를 무조건 써야만 할 때였으니, 자다 일어나 소리를 지를 정도로(..) 현실과 연계된 아주 생생한 꿈을 꿨을 때 생활회화 수준으로 한 정도밖에 안 됐다. 하지만 영어로 꿈을 꿔 본 적은 있다. 무려 한국에서. 그것도 아주 어릴 때.





 그때 나는 우리 나이로 6살이었다. 만으로는 4-5살이었겠지? 나는 말과 글은 빨리 익혔지만 움직이는 것은 싫어하는 아이였다(걷기는커녕 잘 기지도 않았지만, 멀리 있는 손수건이 필요하면 '엄마 손수건 줘'이렇게 일찍부터 문장으로 말했었다고 들었다). 엄마 말로는 남동생까지 우리 셋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하면, 나는 딱 한 바퀴 돌고 혼자 집에 와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였다고 한다.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는 건 당시 내가 했던 생각들이다. 6살 때 나는 일기도 쓰고, '이원수 전집'같은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아 동시도 짓고 짧은 이야기도 쓰곤 했던 '작기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나는 다른 나라,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글은 곧잘 읽고 쓰니,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나 다른 나라 말 배우고 싶어."라고 했었다.


 엄마의 입장에서, 내 딸이 그런 말을 한다면 당장에 뭐라도 시켜줄 것 같다. 나뿐 아니라 '영어 공화국'인 우리나라 부모라면 대부분 다 그러지 않을까.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중엔 아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분들도 많이 봤다.


 그 당시의 우리 엄마는 외국어 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영어 학습지는 시켜 줬다('다른 나라 말'중 엄마가 택한 언어가 영어였다). 그때 처음 배웠던 영어 알파벳이 P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정말이지 영어에 빠져 살았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내가 스스로 돌려서 들었다. 그리고 몇 주 뒤, F를 배웠을 때 그게 꿈에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물웅덩이 같은 곳에 빠져 있었는데, 거기 빠진 상태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F! Frog(F와 같이 나왔던 단어)! Frog! 도와줘(이 말은 영어로 못했다)!"


 비록 교수님처럼 복잡한 문장을 말한 건 아니었지만(그럴 수준도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 '순수한 무의식'에 가까운 꿈이었던 것 같다. 영어를 빨리 더 배우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어린 나의 불타는 열정에서 비롯된 꿈.


 그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칠 때까지, 그리고 외고에서도 난 한 번도 영어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돈 계산할 때 필요한 사칙연산만 하면 되지, 도대체 지수나 로그나 확통 같은 건 왜 배우는 거지?'라며 수학을 배척했던 것과 정 반대다. 영어는 수학과 씨름하다 좀 쉬고 싶을 때 보는 '휴식처'였다. 모의고사도 수학은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공부해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는데(심지어 반타작을 할 때도 있었다), 영어는 한두 번 빼고는 항상 백점이었다. 어릴때 책을 읽은 덕분에 국어도 항상 1등급이었지만, 영어처럼 계속 백점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취향이 확실했던 덕분에, 내 진로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선 숫자 쓰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수학은 온 세상의 기초인데, 그걸 고딩 때 진작 알았더라면 싶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서 내가 수학자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다. 바로 '외국어 배우기'. 또 기왕이면 끝장을 보고 싶었다.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외국어 분야의 끝판왕은 '통역사'였다. '동시통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진로 상담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외국어를 좋아하고 말도 빠르고 많은(..) 나의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며 동시통역사가 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기 때문이다.


 동시통역사. 딱 내가 원하던 직업 같았다. 근데, 그렇다면 무슨 언어를 해야 하지?

외국어 배우기에 좋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덕에, 학창 시절 일본어와 중국어도 원어민 선생님들에게 깔짝깔짝 배웠다. 지금도 그때 배운 어휘와 문장들로 간단한 여행회화 같은 건 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일본어와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이웃나라의 언어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영어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당장 같은 학교 내에도 영어권 국가에 오래 살다 온 원어민 같은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언어를 단순히 잘하는 것과 통번역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그냥 경쟁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블루 오션을 원했다. 이것도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나는 원래부터(=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혼자 무서워하곤 했는데, 그냥 내가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는 예기 불안이 높은 것도 '기질'이라는 건, 나처럼 온갖 상상을 다 하는 아이를 보며 밤에 시간을 내어 육아서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래서 나의 진로('어떤 언어를 택할 것인가'하는) 고민은 깊어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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