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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얀 Dec 30. 2023

평생의 꿈, 이루어지다


 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동시통역사가 되려면, 1학년 때 기초를 쌓으며 2학년때까진 기다려야 했다. 1학년 2학기가 끝날 무렵 ‘분반 시험’을 치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국제회의반(a.k.a 동시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대 2학년이 되면, 세부 전공이 정해진다. 국제회의(동시) 통역 또는 순차통역/번역. 적어도 그 당시엔 그랬다.


 현장에서 보니 ’동시통역‘의 개념을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동시는 말 그대로 ‘연사가 말을 함과 동시에 통역’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스 안에서 헤드셋을 끼고 한다. 거기서 귀로는 연사의 말을 듣고 다음에 어떻게 통역할지 생각하며, 동시에 입으로는 끊임없이 들리는(혹은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타겟 언어로 변환해 내뱉어야 한다. 실시간으로.

 그러니까, 평소에 연사가 먼저 말을 하고, 잠시 쉬는 동안 통역사가 통역을 하는 것처럼 아무 장비 없이 (물론 노트와 펜은 필요함..) 할 수 있는 건 모두 순차통역이다.


 어찌 됐든, 나는 동시통역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1학년 2학기 끝날 무렵 분반 시험을 쳤다. 원어민 교수님과 한국인 교수님이 각각 아랍어와 한국어로 연설문을 읽으시면, 그걸 순차로 통역하는 게(동시는 아직 배운 적이 없으니) 분반 시험이었다. 지금은 제도가 좀 바뀌었다고 들었다. 분반 시험 없이, 원하면 누구나 동시든 순차든 번역이든 어떤 전공이라도 선택하는 걸로(대신 이수해야 할 학점이나 통과할 시험 같은 건 있겠지? 내가 졸업한 뒤라 정확히는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동시반이 되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읽을 텍스트도 많다고 들었는데, 진짜 그랬다(사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훈련을 많이 받았고, 그보다 더 많이 연습했다.


 부스 안에서 연사의 말을 셰도잉하며 노트에 7씩 더해가며 쓰는 훈련(아마도 뇌의 다른 영역을 쓰는 훈련..?)부터, 실제 현장에서 하는 것처럼 간단한 정보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오로지 내 두 귀에 의존해 듣고 통역하는 훈련까지. 그리고 동시반에게는 청중들(학부생, 선후배, 동기들, 교수님 등을 포함한)을 모시고 실제로 동시통역을 해 볼 기회도 여러 번 주어졌다. 튀니지인 작가, 사우디인 대사 등 여러 인사들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통역해 봤었다.



 평생 읽을 아랍어를 지금 다 땡겨 읽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읽었고, 평생 들을 아랍어를 다 듣나 싶을 만큼 들었다. 동기들과 통역 연습을 하다 보면 도대체 언제쯤 실력이 느나 싶었다가 어느 순간 보면 ‘어, 좀 늘었네?’ 하는 순간이 왔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매일 아랍어를 듣고 읽다가 보면 이 말이 그 말인 것 같고, 지금 읽는 게 아까 읽었던 것 같고.. 그러다 잠이 들고 깨면 또 아랍어를 보고 듣고..(꿈에 안 나온 게 신기하다. 나왔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걸까?)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재밌고 신기했다. 내 평생의 꿈이 현실이 되어 가는 중이었으니까.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어엿한 동시통역사가 되는 거니까.


 졸업시험은 아한/한아 동시, 전문동시, 순차 이렇게 6과목을 각각 10분씩(20분이었나? 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보는 거였다. 과목당 10분이든 20분이든, 그 짧은 시간 안에 통대에서의 2년이 어땠는지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했다. 하지만 그게 룰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마지막 시험 때는 내 부스에 느닷없이 파리가 들어와 마이크에 앉길래 손으로 계속 쫓으며 통역해야 하는 등..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6과목 모두 한 번에 통과했다. 결과 발표가 났을 때의 기쁨과 뿌듯함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거다. 내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내가 동시통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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