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동시통역사가 됐다. 행복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동시통역사가 됐어. 그래서...? 앞으론 뭘 해야 하지?
졸업시험을 통과했을 때의 행복감은, 이상하게도 대학원 졸업장을 받는 순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나를 감싸 주던 대학원이라는 상아탑의 테두리가 없어지고, 지금부터는 차가운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는 게 실감 나서였을까.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며, 누군가 뭘 하냐고 물으면 "통번역대학원 다녀요"할 수 있었던 2년이 끝난 것이다.
재학 시절과 달리 졸업 후엔 "동시통역사예요"라고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시 내가 동시통역사가 되었다는 것 자체는 실질적으론 별 의미가 없었다(기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동시반을 나온 동시통역사라는 건, 내가 동시통역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스킬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게 진짜로 밥벌이가 되려면 실제로 뭔갈 해야 했다. 동시든 순차든 번역이든. 혹은 제3의 일이든.
슬픈(?) 사실은, 아랍어로 동시통역을 할 기회는 1년에 몇 차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드문 기회 안에서도, 기존에 활동 중인 선배들 및 앞으로 치고 올라올 후배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사실상 동시통역을 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이건 알고는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순차통역과 번역.
교수님 중 한 분이 '동시통역을 하면 순차통역은 쉽게 할 수 있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고 순차를 아주 쉽게 술술 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확실히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긴 했다. 문제는 이제 막 시장에 나온 새내기 통역사인 나에겐 그 순차통역을 할 기회도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재학 중에 나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들 몇 분이 소개해 주신 자리가 있었는데, 그게 거의 다였다. 번역은 에이전시를 통해 간간이 들어오긴 했지만, 고정 수입으로 잡을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일단 패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다. 심지어 교수님들조차도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셨을 것이다. 통번역 시장에서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으려면, 물론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는 가정 하에,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쌓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당연한 사실이 그 당시의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가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때까지 확실한 목적지를 바탕으로 '빠르게,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착착 진행해 온 나에겐, 모범생 콤플렉스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더욱 큰 불안에 휩싸였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 나에게 실망하실 텐데...'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대체 뭐가 그리 급했을까? 인생은 긴데 말이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초기 몇 년의 빌드업 기간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조급했고, 불안했다. 원래 일어나지 않은 일, 온갖 최악을 상상해서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있지만 그땐 더했다.
그래도 당시의 나를 이해해 보자면.. 모든 능선을 착착 넘어오다, 결국 가장 크고 중요한 봉우리의 정상에 우뚝 섰다. 그런데 거기서 보이는 길, 당장 내가 가야 하는 길은 (내가 느끼기에) 아주 가파른 낭떠러지다. 거기다 평소 가져온 모범생 콤플렉스까지 합쳐져서, 그전까지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안을 느꼈다. 장밋빛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미래에 처음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이다.
이렇게 드문드문 일을 하다 결국 아무 일도 안 들어오게 되면? 그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뭐가 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로지 외국어 한 길만 파왔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뭘 해 먹고살지? 이중전공을 택할 때 선배들이 ‘언어 관련된 과만 생각하지 말고, 상경계열을 하나쯤 넣어야 한다’고 조언한 걸 귀담아 들었어야 했나.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 내 모든 걸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그 '빌드업' 기간의 불안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거다. 프리랜서 통번역사를 꿈꾸던 나는 이제 입사를, 그것도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하길 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다. 입사가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이 맞는지,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물어보고 신중하게 답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이십대 중반이었는데.. 뭐가 그리 급했던 걸까. 천천히 심호흡하고, 들어오는 의뢰에 최선을 다하며 몇 년만 버텨볼걸. 다른 사람의 눈이 그리도 중요했나? 나 자신의 꿈보다도?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던 어느 날, 나의 눈에 확 띄는 공고가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큰 공기업에서, 처음으로 아랍어 특기자를 뽑는다는 거였다. 이미 많은 현직 선배들이 원서를 넣었거나, 넣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만큼 큰 건(!)이었다. 오랜만에 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해외 사업을 한다는 자리였다. 당연히 아랍어뿐 아니라 영어도 쓸 거였다. 전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심지어 잘 살리면서!) 영어까지 쓸 수 있는 자리. 딱 나를 위한 자리 같았다. 그 자리에 꼭 가고 싶었다. 그곳에서도 나를 알아봐 주길 간절히 바라며, 지원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