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아이를 만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 동안의 격렬한 진통(근데 너무 짧아서 무통도 못 맞았다..), 그 후에 부서질 듯 작은 몸을 한 아이가 내 품으로 왔는데, 아이도 내가 궁금했는지 태어나자마자 억지로(?) 눈을 떴다.
아기는 원래 이렇게 작은 건가? 그동안 신생아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아기에게 관심도 없어서 몰랐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무서웠다. 내 서툴고 무심한 손길이 이 작은 아가를 다치게 할까 봐.
고백하자면, 아기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막 사랑이 뿜어져 나오고 ‘난 이 아이 없으면 못 살아!’ 이런 건 아니었다. 처음엔 회음부, 다음엔 젖몸살의 고통에 휘말려서 그럴 정신이 없었다. 특히나 젖몸살은 생으로 다 느낀 진통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진통은 끝이라도 있는데, 이건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남들은 조리원 천국이라는데, 나는 젖몸살 때문에 강제로 새벽에 꼬박꼬박 일어나야 해서 천국인지 아닌지도 몰랐다(물론 그러다 집에 가 보니 조리원이 정말 천국이었다). 신생아실 빼고는 온 사방이 조용한 그곳에서 나 혼자 일어나 유축을 하려니, 온갖 번민과 번뇌가 나를 괴롭혔다. 그중 최고봉은 물론 ‘승진한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였다.
이런 핏덩이(복직할 무렵엔 좀 더 자라 있긴 하겠지만..)를 두고 내가 그 먼 곳으로 다시 이동을 했다. 왜? 외국어 좀 쓰자고. 이 아이를 내가 데려갈 순 없을 거다. 집을 또 구할 여건이 안 된다. 근데 어쩌자고 승진을 했지? 왜 이럴 땐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고 내 멋대로 해 버린 거지? 내 인생만 걸린 게 아니라, 어쩌면 아이 인생도 걸려 있는 문제인데. 왜 아이 생각은 안 했지? 내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왜 나는 아이를 떼놓고 가도 잘 살 거라 생각했지?
물론 ‘주말 엄마’ 생활은 아직 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아이도 남편도,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호르몬 때문인지 이런 중립적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유축을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쉬거나 자려고 누웠을 때도.. 오로지 아이를 떼어 놓고 혼자 본사로 가야 할 나와, 그런 나를 보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이 엄마라는 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저런 잡생각이 가능했던 것도 조리원에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집에 돌아가서(친정으로 바로 내려갔다) 남편과 엄마 아빠, 남동생을 만나니 나를 괴롭히던 번민과 번뇌는 잠깐(?) 사라졌다. 수시로 깨서 울어대는 신생아를 두고 초보 엄마 아빠, 나름 경력직이나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육아 상식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 취업 준비 중이던 남동생, 이렇게 어른 다섯 명이 쩔쩔매는 현실 육아 덕분이었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아기를 대신 봐줄 사람이 항상 있으니, 아기를 잠깐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책을 읽기도 했다. 사실 몸도 훨씬 덜 힘든 거였다. 처음 세 달은 친정에 있었는데, 이후 남편과 나만 사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며 평일엔 항상 아이와 나,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그땐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남편이 오면 아이는 항상 잠들어 있었다). 말이 '둘만의 시간'이지, 사실 '한 명이 좌지우지하는 시간'이었던 건 안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