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결정적으로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다시 승진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승진시험을 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난 내가 이렇게 후회를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을 피하는 편이었다.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부담스러웠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기는 뭐.. 그냥 시끄럽게 울기만 하는 거 아닌가? 친척 중 누가 아기를 낳아서 데려와도 안아보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었기에, 내가 이 정도의 모성애를 가지게 되리란 건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로 인해 승진 시험을 본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인생 최악의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앞뒤 전혀 재보지 않고 '이기적인' 결정을 내린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탓해야 했으니까. 우리가 아기는 다 키워줄 테니 승진하라고 하셨던 부모님(이후 상황이 변해서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지 않았던 주변 분들(사실 조언을 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내가 듣지 않은 거였다), 나를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남편까지(남편이 들으면 억울해서 팔짝 뛸 일이다).
의외였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기쁨과 뿌듯함도 커져만 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보람찬 일일 줄이야. 휴직 전, 회사의 여자 선배들에게 '아이 키우다가 죽는 줄 알았다. 그땐 3개월만 쉴 수 있었는데, 그래도 더 빨리 복직하고 싶어서 혼났다.' 이런 말만 들었다. 그래서 집안일은 완전 젬병인 나에겐 아이 키우는 일이 더 버겁기만 할 줄 알았다. 더욱이 나는 회사로 돌아와 이루고 싶은 꿈도 있었으니까. 기왕에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한 거,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외국어도 쓰면서 그 꿈을 이루면 더 좋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며, 오히려 회사 다닐 때는 느껴보지 못한 보람과 벅참과 감동을 느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며 여기까지 키운 아이.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아이. 인사이동을 겪으며 느낀 바, 회사에서의 나는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다. 내가 빠지면 처음엔 좀 삐그덕거릴지 모르겠으나, 곧 그 자리는 대체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이에게 나는 온 세상이고, 우주다. 내가 없으면 아무도 그 자리를 그대로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가져오는 막중한 책임감보다도, 아이를 이만큼 키워낸 데 따르는 보람이 훨씬 컸다.
그러던 차에, 나의 번뇌가 쏙 들어갈 일이 생겼다. 뱃속에 또 다른 생명이 들어온 것이다. 둘째 계획은 있긴 했는데, 남편이 '둘째는 잘 안 생긴다니까 한 번 연습해 보자'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그 한 번의 연습에 바로 둘째가 생겼다.(승진시험도 그렇고, 그놈의 연습이 문제다. 앞으론 연습을 안 해야 하나..)
이제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동생이 태어날 무렵이면 첫째는 두돌쯤 된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동생을 보게 된 첫째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18개월 재접근기는 좀 벗어났네? 하던 순간.. 내가 임신 기간을 12개월로 생각했음을 깨달았다(당시는 출산한 지 1년도 안 됐었는데..). 심지어,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5-6주였는데, 그걸 계산에 넣지 않았다. 다시 계산해 보니, 둘째가 태어날 때쯤 첫째는 19개월이다.
하.. 내가 생각한 첫째와 둘째 터울의 마지노선이 24개월이었고, 이상적인 건 30개월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18개월 차이면, 연년생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쌍둥이보다 힘들다'는 말이 돌던 연년생(실제로 다른 쌍둥이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게 연년생인데.. 거기다 둘째 출산 예정일은 무려 1월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