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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얀 Jan 02. 2024

우리의 '우당탕퉁탕'을 사랑해

 '어쩌다 연년생 엄마'가 되었다. 이제 실전이다. 처음 4개월 중 한 달은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셨고, 나머지 3달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다(3+3 휴직제도의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그 이후는, 퇴근한 남편의 미미하다면 미미한 도움 말고는, 나 혼자 해야 했다.



 아침 8~9시(내가 먼저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유동적이다). 첫째가 나를 깨운다. 동생의 탄생 이후, 같은 방에서 다른 침대에 자던 첫째는 아예 내 침대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지금도 같이 자고 있다. 벌써 1년째다.


 일어나면 밖으로 나와서, '책 읽어달라'는 첫째의 요청에 응한다. 일단 한 권 읽어주고는, 방에서 '야~' '꺅!' '엄마!' '맘마!' '에에에에' 등, '나도 여기 있다! 나도 일어났다!'를 갖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둘째를 데리고 나온다(둘째는.. 독방에서 혼자 잔다ㅠ. 휴직기간 중에 남편이 이런 습관을 들여놨는데, 덕분에 나도 편하긴 하다).


 그리고 빨리 아가들이 먹을 아침을 만든다. 전날 미리 만들어 놓는 사치는 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서 아침은 무조건 간단해야 한다. 오트밀을 활용해서, 첫째는 포리지를 만들어 주고, 둘째는 자기 주도로 먹게 오트밀빵 같은 걸 구워준다(둘째가 스스로 먹어야 모두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일단 둘 다 응가를 한다. 응가 씻고 치우고 샤워하는 데 약 한 시간쯤 걸린다. 응가까지 하고 나면 더 이상 걸릴 게 없다. 밖에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조건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요즘엔 첫째의 반발에 부딪힌다. 본인도 나가곤 싶어 하지만,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귀찮은 것 같다. 온갖 실랑이 끝에("이 옷 싫어! 이거 안 입을래!" "내가! 내가 직접 할래!" "(엉엉) 이거 잘 안 돼.. 엄마가 해줘!") 옷 입고 준비하는 데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화를 내고 ‘엄마가 감정 조절을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할 때도 있다. 결국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점심을 먹을 시간에서야 겨우 밖에 나간다.


 그래도 두 시간쯤은 놀고 와야 한다. 그 사이 둘째는 유모차에서 분유를 먹고 낮잠도 잔다. 그네 놀이터, 모래 놀이터, 그물 놀이터 등을 전전한다. 앉아서 모래놀이라도 하면, 나도 같이 앉아서 아이와 함께 논다. 이때가 하루 중 내가 가장 충만하고 보람을 느끼는 시간 중 하나기 때문에, 나도 최대한 집중하고 그 순간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들어오면 또 바로 점심시간이다. 이미 좀 늦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정신없이 아이들 점심을 차리고(얼마 전부터는 '내가 모두 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시판 이유식과 반찬을 먹이기 시작했다. 안 그러면 밖에 나가 놀 수가 없다.). 나도 대충 끼니를 때운다. 물론 이때 나만 와구와구 먹는 게 아니고, 둘째도 먹이며 간간이 내가 먹어야 한다.


 밥 먹고 치우고 아이들을 간단히 씻기고 간식도 주고 나면 서너 시가 된다. 이때부턴 좀 정적인 활동을 한다. 책 읽기나 물감 놀이나 클레이 놀이. 사실 물감 놀이나 클레이 놀이는 요즘 많이는 못하고 있다. 기어 오는 둘째를 막으며 뒷정리를 다 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도 연필이나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기 같은 건 한다. “엄마가 호랑이 그려 봐!” 명령을 듣고 없는 그림실력을 쥐어짜 나도 그릴 때도 있다. 아니면 각종 역할 놀이를 하거나. 요리사, 도서관 관장, 경비 할아버지, 가게 주인, 아기 돌보는 엄마.. 하도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니 이번엔 ‘누구냐’고 꼭 물어봐야 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려는 발악(?)으로 보이는가? 지루해 보이는가? 전혀. 오히려 이 시간은 하루 중 두 번째로 나에게 충족감과 기쁨을 주는 시간이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아이의 어휘와(이제 거의 어른처럼 말한다), 아이의 순진하지만 기발한 발상에 감탄하다 보면, 지금 내가 회사를 가지 않고 이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아이들 둘 저녁을 먼저 먹인다. 이때쯤이면 첫째도 졸려서, '지금 동생이 됐어~' 이러면서 자기도 먹여달라고 한다. 둘 다 먹이고 나면 남편이 오고, 우리도 저녁을 먹는다.


 아이들을 재우는 건 내 몫이다. 둘째는 그냥 기저귀만 갈아주고 방에 눕히고 인사하고 나오면 되니 껌이다. 첫째는.. 방에 가서도 한참 잠자리 독서를 해야 한다. 요즘엔 아주 인터랙티브(?)한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책에 산타 할아버지가 나오면, "할아버지! 졸리지 않으세요? 선물 다 주셨어요?" 뭐 이렇게 말을 걸거나, 인형을 책에 막 비빈 후 "할아버지! 간지럽죠? 진짜 간지럽죠?" 하는 식...), 잠들기까지 오래 걸린다. 그렇지만, 이때도 그 순간에 집중한다. 주말 엄마가 되고 나면 제일 그리울 시간일 걸 잘 알기에. 아이에게 최대한 반응을 해주고, 읽어달라는 만큼 책을 읽어준다. 아이가 잠들면 살그머니 빠져나와서 잠깐 내 시간을 갖다가, 다시 슬그머니 들어와서 아이 옆에서 잠을 잔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정말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이 거의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는 게 실감 난다. 상사의 기분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매일매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다이내믹한 회사 생활과도, 정글에서 살아가는 야생 오랑우탄이 된 것 같은 프리랜서 통번역사 생활과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한때 내가 그렇게도 바라 마지않던 삶이었다.



 그런데, 이 평범한 하루하루를 아이들과 공유하고 있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다면 믿어지시는가? 처음엔 내가 육아하는 삶에 이다지도 만족한다는 게 나조차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리도 싫어하던 '잡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찌 보면 아주 일차원적인 잡일이다. 밥 차리고 치우고, 응가 치우고, 씻기고 먹이고... 하지만 이런 잡일 뒤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보람이 따라왔다. 나의 이런 잡일 덕에 오늘도 무사히 잘 크고 있는 두 새싹을 보는 것. 지금까지 내가 이뤘던 어떤 꿈과 목표도 이만큼 큰 보람과 충족감을 주진 못했다. 동시통역사가 된 것도, '신의 직장'이라는 곳에 입사해서 초스피드로 승진을 한 것도.


 

 '내가 그동안 회사생활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기쁨도 크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그렇게 얻어지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곧 또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난 항상 조금 행복하다 마는 걸까? 그렇게 바라던 꿈과 목표를 이뤘는데도, 왜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항상 다른 걸, 조금 더 좋은 걸 바라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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