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예비 연년생 엄마가 됐다. 그런데 내 몸이 무겁다고 해서 첫째 아이에게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이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주말 엄마'가 될 사람이, 동생까지 빨리 낳게 생겼는데.. 어떻게든 첫째를 잘 챙겨 보기로 했다.
이건 순전히 미안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아니, 오기도 들어간 건가? 배는 점점 불러오고, 첫째는 말도 많이 늘었지만 그만큼 떼도 늘어가는 시기였다. 곧 공포의 18개월 재접근기가 다가올 것이었다. 그래도 꿋꿋이 첫째의 손을 잡고 매일 산책을 나갔다. 많은 분들이 '아이구, 엄마 힘들겠다~' '왜 어린이집 안 갔어?' '아가 곧 어린이집 가야겠네?'라고 하셨다. 하지만 첫째는 그때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 내가 첫째를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나도 참 독하다. 사실 그냥 독하기만 한 게 아니고 운도 좋다. 첫째 둘째 임신기간에 입덧도 없고, 먹기만 잘 먹었으니까.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건 애초에 입덧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하지만 아무리 입덧이 없다 해도, 배가 많이 나오는 시기엔 물리적으로 힘이 들긴 했다. 첫째도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기에, 내가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거나 첫째를 안아주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첫째도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안아줘~ 엄마 안아줘~' 할 때가 많았고). 그렇지만 그때도 버텼다. 둘째가 40주 5일 차에 나왔으니까, 마지막 3주 정도는 엄마가 우리 집에 와 계셨다. 하지만 그전, 그러니까 38주 차까지는 나 혼자 첫째를 돌보며 버텼다.
첫째와 둘이 있는 동안에도, 영상 시청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면 몸은 좀 편했겠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첫째와 둘이 있는 시간을 즐기려고 산책을 했다. 동네 산책도 하고, 놀이터도 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는 좀 떨어져 있는 도서관까지 유모차를 태워 가기도 했다. 쌓인 눈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12월 중순부터 외출을 좀 자제하다가, 다시 1월 초에 오랜만에 도서관을 가니 '둘째 낳으러 가신 줄 알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예전 사진을 보니, 1월 5일에도 도서관에 갔었고, 1월 6일엔 놀이터와 수목원에 갔었다(둘째는 1월 7일에 태어났다).
둘째를 낳고 난 직후에도, 그리고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도 첫째 생각이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조리원에도 5일만 머물렀다. 첫째가 태어났을 땐 승진에 대한 후회로 적셨던 베갯잇을 이번엔 첫째에 대한 그리움과 너무 빨리 둘째를 낳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 태어난 둘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그만 좀 미안해하고 싶다..)
어쨌든,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이미 지나온 일은 그만 생각하자. 내가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일인데 후회만 하면 뭐 하나?'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비생산적인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을 바꿔 먹으려 했다. 물론 승진 관련된 후회는 잘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를 낳은 시기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있었다. '만약 이 시기에 둘째를 낳지 않았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만나지 못했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아주 효과(?)가 좋다. 아이 둘을 기관에 보내지 않는 오기 100단의 내가 가끔 '아.. 연년생으로 낳으면 안 되는 거였나' 하고 뜬금없는 탄식을 할 때, 그 탄식이 후회로 번지기 직전 단계에서 머릿속 회로를 차단해 주는 서킷 브레이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연년생을 낳고 힘들어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이런 생각을 해 보시길. 연년생이었기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둘째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