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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얀 Jan 02. 2024

에필로그 : 마음 챙김



 '마음 챙김'이라는 말을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지금 여기 감사 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땐 그리 와닿진 않았는데, 또 번민에 시달리다 책을 통해서라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서 읽었던 두 권의 책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많이 바꿔 주었다. 내가 그동안 읽어본 육아서 중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깨어있는 부모>와 <깨어있는 양육>이 그 두 권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챙김'. 이 책들을 보는 순간 '이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뭔가가 정리되는 것 같았다. 첫째를 키우며 내가 느꼈던 보람과 충족감 모두, 나도 모르게(?) 첫째와 함께 보내는 순간에 최대한 집중할 때 느꼈던 것이었다. 


 이제 아이가 둘이 된 지금, 솔직히 아이 한 명 한 명과 보내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더 어렵긴 하다. 아니, 그런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가 자야 첫째에게 겨우 집중할 수 있다. 아마 첫째가 기관에 가야 둘째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셋이 전부 함께 하는 시간에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순간에 집중할 수는 있다. 나에게 달려드는 둘째를 부둥켜안는 내 팔에 들어가는 힘을 느끼며, 첫째의 말에 계속 답해준다. 첫째가 요리해서 주는 장난감 음식들을 오감을 동원해(..) 먹으며, 아주 간질간질 보들보들한 둘째의 머리카락이 내 턱과 손에 와닿는 감촉을 느낀다. 이렇게 그 순간순간에 충실하려 노력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나도 그 순간을 진짜로 즐기게 된다. 아이들과 억지로 놀아주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놀게 된다. 이렇게 재밌게 놀면서 아이들의(물론, 주로 첫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마주하며 전율을 느끼는 게, 매일매일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육아인이 된 후, 그리고 아이가 둘이 된 후, 내가 주로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이랬다.


 아이가 둘이라 첫째 혼자만 있을 때처럼 각각 신경을 못 써 주는데서 오는 미안함. 엄마의 커리어와 자기만족을 위해 주말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한 데 따르는 죄책감.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그 시간만큼의 커리어가 단절되는데서 오는 좌절과 불안함.


 이 모든 잡념을 완전히 떨쳐버렸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오래전에 정말로 내던져 버린 '커리어 단절에 따른 좌절'을 빼면, 처음 두 가지 생각은 아직도 가끔은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많은 건 사실이나, 그럴 때 몸만 함께 있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으려면 내가 느끼는 모든 것과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와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의 '행복한 나'를 만들어 주니까. 내가 그렇게 행복해야 앞으로 펼쳐질 나날도,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조금씩 천천히 행복을 향해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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