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에서
푸꾸옥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세 돌도 안된 아가들 둘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사파리와 아쿠아리움 등을 다녔던 첫 며칠간을 빼곤
눈 뜨면 밥 먹고 물놀이, 물놀이, 물놀이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탁 트인 하늘에
그림처럼 넓은 잎을 드리우고 있는
쳐다보기만 해도 휴양휴양
휴양느낌 확 나는 야자수들.
그런 야자수로 둘러싸인 호텔의 드넓은 메인풀에서
서로 튜브를 밀어주며 왔다갔다 하는 수영도 좋고
방 바로 앞의 풀장에서
복도처럼 요리조리 꺾인 부분을 따라 수영하며,
메인풀보다 좁지만 그만큼 프라이빗하고
언제든 바로 방에 들어와 샤워할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역시
끝없는 수평선과 맞닿은
파아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동동 떠 있는
잔물결 이는 바다 수영이었다.
바다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보면
스르르 다시 조금씩 해변으로 밀려가는
그 느낌이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힘 빼고 있어도
다 잘 될 것만 같은,
그렇게 되고 있다는 기분.
그리고 푸꾸옥 해변의 모래는
밀가루를 뿌려놓은 건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낮에는 정말 뜨겁지만
뭐 어떤가.
너무 뜨거우면 바닷물에 첨벙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되는데.
바다는 나와 아가들에게 많은 걸 내줬다.
나에겐 촤아아 하며 끊임없이 파도를 보내 줘서
그 소리를 듣다 보면 잡념들을 잊고
그래, 우리 지금 푸꾸옥이지. 여기가 해변이지.
하며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미지근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조금 전에 남편과 싸웠던 것도 싹 잊을 만큼
기분 전환도 제대로 됐다.
아가들에겐 좀 더 많은 것을 주었다.
거침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처음엔 같이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하던 아이에게
혼자서도 첨벙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한없이 부드러운 모래는
양동이에 넣고 바닷물을 뿌리면 식물이 자란다는(?)
화분 속의 흙이 되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 주었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가는 부분의 진흙같은 모래는
강렬한 햇볕에 빨갛게 익어버린 아이들의 피부를
식혀주는 알로에젤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다는 아가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햇볕에 달구어져 따뜻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몸도 마음도 평화로워서
그저 모래와 야자수와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순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기 바다에 은구슬이 있어!”
무슨 말인가 해서 봤더니
햇볕이 파도에 잘게 부서지며
조각나 보이는 윤슬을
은구슬이라 표현한 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를 젖혀 구름을 보더니
“저 구름들 진짜 맛있어 보인다!
구름으로 구름빵 만들어 먹으면 엄청 부드럽겠지?”
라고 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이
아이의 현실에서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또 바다는
갈 때마다 아가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은
얕은 물 속에서
내 손바닥만 한 게가 얼굴을 내밀었고,
또 다른 날은
더 크고 멋진 소라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던 소라게들이 있었다.
비닐봉지처럼 투명하지만
미역줄기 같은 촉수를 달고 있던
내 얼굴보다 더 큰 해파리가
죽어서 해변으로 밀려온 것도 봤다.
이렇게 바다의 새로움과 신기함에 눈을 뜨니
아이들은 바다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1년, 아니 10개월 전
제주도 바다에 발도 담그기 싫다고
모래사장 떠나가라 울던 두돌 아기는 어디 가고
혼자서 바다에 들어가겠다며,
엄마 아빠를 따라 첨벙첨벙 들어왔다 나가고
어쩌다 넘어져 짠 물을 마셔도 툭 털고 일어나며
모래화분 속 식물에게 줄 바닷물을
혼자 가서 실컷 퍼오는
33개월 아가를 보니
“진짜 장족의 발전이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14개월 둘째는
셋째날 쯤부터 언니를 따라
걸어서 바다로 들어가고 싶어하더니
이젠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닷물을 온 얼굴에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파도가 철썩이는 가운데 튜브에서 낮잠도 자는
바닷사람(..)이 다 됐다.
돌아가는 날까지
원없이 바다를 보다 가야겠다.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