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하여튼 그런 게 아니야
30개월 첫째, 11개월 둘째, 그리고 내가 식탁에 오붓하게 둘러앉은 평화로운 주말 아침. 하지만 역시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엄마! 응가 마려워!”
첫째의 말에, 나와 첫째 둘 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간다. 첫째는 문 앞에서 바지와 기저귀를 벗고(아직 기저귀는 꼭 하겠단다..), 나는 변기에 계단과 아기시트를 둔다. 보름쯤 전부터 갑자기 그동안 잘 써오던 샤워핸들을 거부하고 엄마 아빠처럼 비데를 써 보고 싶다더니, 그 이후로 응가는 꼭 변기에서 한다. 졸지에 아기 변기는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채 둘째가 얼른 자라서 써 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신중하지만 빠르게 계단을 올라와 시트에 앉은 첫째. 응가가 너무 마려웠단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준다(고 쓰지만 사실 아까부터 이유식 먹여주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집안 떠나갈 듯 항의하고 있는 둘째를 보러 가야 한다). 볼일 다 보고 나면 세정도 하라고 일러뒀다. 비데의 ‘어린이’ 모드 누르는 것 잊지 말라고 당부도 하고. 모든 게 끝나면 엄마를 부르라고 했다.
그런데 둘째가 이유식을 다 먹고 입이랑 손도 다 닦있는데도 첫째의 콜이 없다. “다 했어?“ 물어보니 ”아직! 더 나올 거 같아!“ 이런 대답만 돌아왔다. 좀 더 기다리다 다시 물어봐도 ”응가 아직 더 할 거야~“라고만 한다. “자꾸 그렇게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 걸릴 수 있..” 까지 말하다가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갑자기 현타가 왔다. 첫째는 나를 따라 하는 거구나. 나를 보고 배운 거구나..
나는 원래도 변기에 앉아 핸드폰 쓰는 걸 좋아했지만, 본격 연년생 가정보육맘이 되고 난 이후엔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물론 화장실에 머무르는 절대적인 시간은 더 짧을 거다. 일단 내 맘대로 화장실 가는 것 자체도 쉽지 않으니.. 그렇지만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변기에 앉는 그 한순간만이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기에 방해받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 그래서 자꾸 따라 들어오려고 기어 오는 둘째 앞에서 문을 닫는다. 첫째 땐 문도 못 닫았는데, 둘째 엄마라 그나마 문이라도 닫는다. 그럼 둘째는 조금 머물다가 다른 데로 간다. 문제는 언니다. 첫째는 ‘Do not disturb!’라는 나의 확실한 메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동생은 못 들어오게 하려고 야무지게 문을 다시 닫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는 “엄마 혼자 심심할까 봐 왔어~” 라며 변기 앞 작은 의자에 걸터앉는다. 그러면서 본 것이다. 변기 위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핸드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꼭 쥐고 있는 나를.
사실 예전에 아기변기를 쓸 때도 나를 흉내 내려 하는 낌새가 있었다. 한 번은 첫째가 오줌 마렵다며 아기 변기에 앉았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 참! 핸드폰 가져가야지!” 하며 둘째의 아기용 핸드폰을 들고 다시 가서 앉는 것 아닌가. 누가 봐도 내 모습이었기에, 그때 나름 반성을 하며 ‘음.. 이제 화장실에 갈 때 책을 들고 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것도 그때뿐.. 역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쨌든 결국 내가 화장실로 가서 이만하면 이제 된 것 같다고, 억지로 쥐어짤 필요는 없다고(!) 조언을 건네며 오늘 아침의 루틴을 마무리했다. 변기에 이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 걸릴 수 있다고, 내가 엄마에게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을 덧붙이면서. 그랬더니 ‘그럼 엄마는..?’ 하는 표정으로 의아하게 나를 본다. “엄마는 치질 안 걸려?”라고 결정타를 날리면서. 그래, 네가 어떻게 알겠니. 한 평 남짓한 공간의 변기 위에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이 엄마의 마음을… 이런 마음을 차마 설명할 수가 없어서, 지킬 수 없는(!) 다짐을 또 해본다. 앞으론 엄마가 화장실에 핸드폰 안 가지고 갈게, 화장실 갔다가 빨리 나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