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들의 손짓
명절에는 차표 구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늘 혼자 내려가다 보니 어떻게든 차표 한 장 정도는 구한다.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광클릭'을 하다 보면 운 좋게 한 장이 딱 걸리는데 마우스를 누르던 손끝에서 짜릿함마저 느껴진다. 낚시꾼들의 손맛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나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해 질 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다. 산도 들도 강도. 모든 경치가 뒤로 흘러가고 새로운 풍경이 금세 찾아온다. 제법 비싼 KTX 기차표에 포함된 특별 부가서비스라 하겠다.
차창 밖 그 경치 바로 위로 앞 좌석에 앉아 계신 어느 아저씨의 모습이 겹쳐서 비친다. 말끔한 흰색 와이셔츠 차림. 비친 창 위로 누군가와 영상통화하는 모습을 본의 아니게 엿보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에 갑자기 휙 끼어든 것 같아 들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동시에 몰래 염탐하는 스파이 같은 기분이 들어 살짝 긴장되기도 한다.
어느 여성분과 영상통화를 하고 계신다. 아내일까. 애인일까. 수화로 통화하는 걸 보면 이 아저씨는 청각장애인이신 듯하다. 순간 수화하는 손짓이 오케스트라 지휘처럼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더욱이 노을 위에 담긴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나로 하여금 그렇게 감상적이게 만든 건 아마도 영상통화 속 여자분 때문인 것 같다. 영상 속의 그 여자분은 무어라 알아듣지 못할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똑같이 수화로. 그리고 그 표정에는 웃음도 보였고 걱정 어린 표정도 보였다. 수화를 모르는 나조차도 그 감정은 온전히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든다.
문득 "말이 독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수천 마디 아무런 장애 없이 입을 놀릴 수 있는 복을 타고났지만, 그 자유로움을 과연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가 물음표가 찍힌다. 부끄러움마저 스멀거리는데 니체의 말이 머릿속을 툭 치고 지나간다.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는 자기책임에의 의지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해본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책임함으로부터 저항의 노력을 기울이련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