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9시 30분 잠실역. 나는 8호선 열차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2호선 열차가 도착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통로 반대편에서 내 쪽으로 쏟아지듯 몰려왔다. 빠르게 걸어오는 군중들 속에는 사람이 아닌 좀비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이 좀비들은 대부분 검은색 슈트에 풀어진 넥타이를 맨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갈지(之) 자로 걸으며 나에게로 돌진해 왔다. 간혹 긴 머리에 치마 차림을 한 좀비들도 보였다.
나는 좀비가 나오는 미드와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이다. 그래서 좀비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단숨에 머리를 찌르든가 잘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역공을 맞아 내가 물리고 만다. 그러면 나도 좀비 신세가 되고 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피범벅인 채 돌아다니는 좀비에 비하면 나를 향해 돌진해 오던 좀비들은 그래도 좀 깔끔한 편이었다. 얼굴이나 눈동자에는 저마다 핏기 서린 것처럼 시뻘겋긴 했지만.
희한하게 좀비들이 무섭지 않고 왠지 모르게 애잔했다. 그래서 이 좀비들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영화에서처럼 공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피해 갔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그들을 지나치는 순간에는 불에 직접 구운 소인지 돼지인지 모를 고기 냄새와 알코올 농도 15~20도 사이의 술 냄새가 뒤범벅된 채 후각 공격을 감행해 왔다. 나는 그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 명씩 피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내가 피해 간 좀비들은 뒤돌아 다시 덤벼들지 않고 그냥 계속 가던 길 가더라. 내가 그들의 후각 공격을 극복하고 반대편까지 무사히 도착한 순간 드는 생각은 "아이 엠 어 히어로".
다음날 그들은 고통을 겪으며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좀비였던 시간을 망각한 채 인간의 삶을 잠시 살다가 월요일을 맞이한다. 이번에는 이들이 좀비에게 물어뜯긴다. 언제까지? 바로 금요일까지. 어디서? 바로 회사라는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