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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Sep 03. 2024

남편, 남친 말고 여자 둘이 삽니다.

서른둘 친구들 결혼할 때 여둘살이 할 결심

어린 시절 즐겁게 불렀던 동요 ‘네모의 꿈’이 나의 주제곡이 될 줄이야. 네모난 집에서 일어나,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모니터를 하~~루종일 보고 있노라니.. 네모의 꿈이 아니고 네모의 현실이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 진작에 넘었고, 정사각형으로 네모 반듯한 8평 원룸에서 3년 넘게 살고 있자니 이 작고 아늑한 집 (아니 방에서)에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거실도 있고, 옷방도 있고, 침실도 있으면 좋겠는데 서울의 집값은 너무너무 비싸기만 하다. 청년주택은 어느 나라의 청년을 위한 주택인지 보증금이 3~4천이다. 그렇다고 빌라는 전세사기가 두렵고, 오피스텔은 월세가 100만 원이 훌쩍 뛰어넘는다. 심지어 투룸도 아니고 복층 구조인데! (자다 일어나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화장실 갈 생각 하니 아찔하여 복층은 진작에 후보에서 제외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현실은 깜깜하니 백마 탄 왕자 말고 서울 신축아파트 자가 있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하면 홀라당 넘어갈 뻔했다. 하마터면 집 때문에 결혼할 뻔했다는 웃긴 상상을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구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사실 그동안 저금한 돈도 있어서 (직장생활 7년 차) 융자 없고, 전세보증보험 가입 되는 1.5룸이나 2룸 빌라를 구하면 된다. 물론 그 집들도 2억 중후반의 비싼 가격이지만, 전세대출을 받으면 경제적으로 거주 문제는 해결된다. 현재도 1억 5천만 원의 원룸 전세를 살고 있는 중이다. (내 돈 5천만 원+전세대출 1억) 그런데 사실 원룸 말고 공간 분리가 되는 집에 살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이사를 결심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전세 말고 월세에 살기 위해서 이다. 이때만 해도 서울에서 월세방 구하기가 더 어려운 걸 몰랐다.


평소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부동산 유튜버 부읽남의 "전세 살지 말고 월세 살아라"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전세대출은 전세 보증금에 이자를 월세처럼 추가로 내야 한다. 전세+월세의 구조여서 돈이 추가로 들기에 지양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보증금도 묶이고, 매 달 이자도 나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모은 돈이 5천만 원이면 5천만 원 보증금을 주고 전세를 살아야지, 여기에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아서 1억 5천만 원짜리 집에 거주하면 내가 무이자로 1억을 집주인(임대인)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설명드릴게요) 이 말에 설득되어 그럼 전세 말고 월세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월급과 저축 금액 등을 고려했을 때 나의 적정 월세 금액은 보증금 1천~2천만 원에 월세 60~70만 원이다. 이제 기준을 정했으니 네이버 부동산과 직방을 열심히 찾았다.


내가 살았던 풀옵션의 8평 원룸. 수납이 잘 되어 있어서 몸만 들어가서 살면 되었다. 작은 집이어도 채광도 좋아서 아늑하게 3년을 지냈다.


필터를 설정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과 회사를 중심으로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현실의 벽은, 서울 자취방 구하기는 정말 녹록지가 않았다. 보증금 2천에 월세 6백으로는 반지층(반지하) 집이나, 여자 혼자 살기에는 너무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다. 집이 괜찮은 경우에는 스키장 상급자 코스 같은 언덕 위에 있는 집이었다.(심지어 마을버스도 안 다님) 결국 나의 네모의 꿈 탈출 계획은 이렇게 집 찾기 단계에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단히 좋은 집에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쾌적하고 늦은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동네이며, 잠자는 공간과 부엌 정도는 분리되면 좋겠다는 건데 그게 참 어려웠다. 다세대빌라, 다가구주택 등 가리지 않고 찾아보았는데 내가 살 집은 없었다. 아니 괜찮은 집이 간혹 있었으나 나의 예산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월세 금액을 높이자니 매달 주거비의 부담이 너무 클 거 같았다. 결국 난 전세 살 운명인가, 그냥 이 집에 계속 살아야 하나? 그럼 언제까지? 좌절의 골짜기에 갇혀버렸다. 서울살이 왜 이리 어려운 거죠.


한풀 의지가 꺾인 채로 출근길에 직방 어플을 켜서 매물을 보고, 여둘톡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작가님들의 말맛에 재밌게 웃다가, '나도 이렇게 친구랑 둘이 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전에 황선우X김하나 작가의 저서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W2C4 (woman 2명, cat 4마리) 분자식 구조로 지내는 작가님들의 라이프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혼자 보단 둘이서 같이 하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느끼는 나의 성향으로는 친구랑 살아도 정말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여둘살이*를 하면 기쁨은 두 배, 월세는 반값 아닌가. 찾았다 반값 월세! 친구랑 둘이 나눠내니 (보증금 1천에 월 60만 원) x 2로, 보증금 2천에 월 120만 원인 투룸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월세 금액을 높이자 선택할 수 있는 매물이 더 많았다. 반값 택배 말고~ 반값 월세~ 얼마나 혁명적이고 좋은가!!! 이제 나의 리틀 여둘살이를 함께할 친구만 있으면 됐다.

*여둘살이: 여자 둘이 산다는 말의 줄임말


보통 내 나이쯤 되어 누구랑 같이 산다고 하면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는 남자친구 이거나,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을 떠올린다. 집 구하기에 좌절을 느꼈을 땐 나도 확 결혼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지만 주거 때문에 결혼을 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남친, 남편도 아닌 나와 함께 살아줄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로 했다. 친구와 같이 살아보는 로망을 실현할 차례이다!


-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을 것

- 당장 결혼 계획이 없을 것(최소 1~2년 내)

- 같이 살면 어떨까 생각했을 때 눈에 보이는 갈등요소가 없을 것


이 정도의 기준을 세우니 딱 한 명의 친구가 떠올랐다. 마침 다음 주에 이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시라노 연애작전 말고, 시라노 반값 월세 작전 계획을 세웠다. ‘동거인으로서 나의 장점을 어필하기, 집 구하는 적극성 보여주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과연 친구를 설득해서 리틀 여둘살이를 시작할 수 있을까? 같이 산다고 해도 우리가 대학생처럼 어리지도 않고, 각자 생활습관과 취향이 확실한데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랑 같이 살아보고 싶었다. 일단은 무진장 재미있을 것 같고(같이 나는솔로 본방보기ㅋ), 서로의 좋은 생활습관을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와 함께 산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때까지 친구는 이런 내 생각을 전혀 몰랐다.)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에 갔다.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담은 뮤지컬 빨래



과연 반값월세!

리틀 여둘살이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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