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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Sep 25. 2024

고양이랑 사는지 착각하게 하는 동거인

서로 달라서 더 재밌는 동거 생활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네로~ 귀여운 나의 친구는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네로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랄랄랄랄랄 랄 랄라


나와 동거인은 성격, 직업, 생활패턴이 모두 다르다. 같이 살기 전에도 우리의 다름을 짐작했지만, 함께 살아보니 같은 상황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매번 놀랍고 재밌다.


내가 강아지 같은 성격이라면, 동거인은 고양이. 나는 외향인, 동거인은 내향인. 내가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동거인은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둔하고 동거인은 예민한 편이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상극이라는데 다행히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재밌어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함께 살며 동거인의 어이없어하는(킹 받은) 표정을 볼 일이 늘었고, 혼자 살 때보다 웃을 일도 많아졌다. 푸하하




동거인(이하 네로라고 통칭)은 고양이처럼 자기 방에 콕 박혀서 조용하다. 어느 날엔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 집에 있는 줄도 모르겠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는 음악도 없이 고요하게 노트북으로 무언가 집중해서 하고 있다. 저녁 먹고 밤이 되면 다시 침대로 올라간다. 침대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책을 읽다가 노트북을 했다가.


우리의 다른 점은 인간관계에서도 통한다.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걸 좋아한다면, 네로는 가까운 사람들과 깊고 오랜 관계를 쌓는 편이다.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쉽게 친하게 지내다가 별로인 점을 발견하고 선을 긋는 것과 달리 네로는 처음부터 친해지기 어려운 벽이 있다. 네로의 착한 얼굴에 속아 무턱대고 다가갔다가는 냥냥펀치 같은 앙칼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직업도 다르다. 나는 직장인, 네로는 대학원생. 그래서 생활패턴도 다른데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네로는 새벽에 자고 느지막이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시간까지 네로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다. 네로는 잘 때도 조용하다. 내가 칼퇴하고 집에 가도 네로가 저녁 수업이 있는 날이면 우린 밤 아홉시는 넘어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열두시 전에는 자는 편이라, 우리가 집에 함께 있는 시간은 24시간 중 고작 2~ 3시간 정도. 내가 쿨쿨 자고 있을 밤과 새벽에 네로는 한창 활동한다. 이걸 좋은 점이라 해야할지? 우리의 다른 생활패턴으로 함께 살지만, 어느 정도 각자의 독립된 생활이 가능하다.


한성대입구역에 있는 고양애 책방 책보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정말 추천하는 장소이다. 고양이 책, 가방, 엽서 등 다양하고 주인분이 기르시는 매력적인 고양이도 있다.



내가 무한 낙관주의 P 성향이라면, 네로는 걱정이 많은 J성향이다. 나는 네로보다 한 달 먼저 이 집에 들어왔는데 살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넘겼던 것들도, 네로는 참지 않는다. 크고 작은 집의 하자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에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낸다.


예를 들어 이사하고 보니 화장실 샤워기의 온수 수압이 약했다.(녹물 나오는 집에서 삽니다.편 참고) 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고 쫄쫄쫄 정도.. 불편했지만 따뜻한 물이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 바닥난방을 하면 온수가 잘 나오지 않을까? 하며 내 맘대로 결론을 내린 뒤 그 상태로 한 달을 살았다.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아직 날이 더워서 괜찮았고 은근히 적응이 됐다. 그렇게 한 달간 이어진 짧고 강렬한 미온수와 냉수 반반 샤워! 씻으면서 이제 날이 추워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건 뭐 그때 되면 방법이 있겠지'라고 속 편하게 생각했다.


이런 나와 달리 네로는 이사 온 첫날 저녁에 샤워를 하고는 경악했다. 어떻게 이러고 살았냐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는 바로 다음날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똑똑한 네로는 샤워기 수압 조절 레버를 발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내 눈에는 안 보이던 게 네로 눈에는 보였다. 역시 영특한 고양이) 네로가 온 뒤에 나는 비로소 화장실에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한 물에 오래오래 샤워를 즐길 수 있다.


나의 얼렁뚱땅 성격..커튼이 없어서 대충 아빠의 환갑축하 현수막으로 창문을 가렸다. 사이즈가 아주 딱 맞아서 만족스러웠는데, 네로는 이사와서 이걸 첨보고 빵 터졌다.





네로는 요리왕이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고 많이 먹는 것에 비해 요리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지만 막상 큰 불편은 없다. 나에겐 불을 쓰지 않고도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에 굽거나 데울 수 있는 구황작물이 있는 걸.(겨울철 나의 주식은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고구마) 그런데 요리를 잘하는 네로와 살며 집에서 찌개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자취방에서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네로는 내가 잘 먹으니 양껏 요리하고도 음식을 남기지 않게 되어 좋아한다. 또 나의 특기는 맛있는 음식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기! 그래서 네로가 만든 음식을 몇 날 며칠 데워먹어도 늘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다.


네로랑 살면서 나는 제법 수용적인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주어진 상황에 크게 불평하지 않고 긍정회로를 돌려서 대충 만족하며 산다. 있으면 물론 좋지만 없어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성격이랄까. 그래서 처음에 이사 온 상태 그대로 지금껏 살고 있었다. 집에 전신 거울이 없으면 없는 대로 (거울을 덜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지),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없는 대로(물에 중탕하거나, 만능 에어프라이어)


그런데 네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불편한 게 있으면 개선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오늘의 집과 다이소에서 찾아낸다! 네로가 구매한 잇템들 덕분에 훨씬 편안하고 윤택하게 생활하고 있다. 부족한 수납을 보완할 문에 거는 옷걸이(나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약통을 모아둘 수납함(나는 그냥 약통을 한쪽에 모아만 뒀다). 다음에 네로의 신박한 살림템들을 따로 브런치에 소개해야겠다.


적고 보니 아무래도 내가 보물 같은 고양이를 집에 들인 거 같다. 네로가 맛있게 요리하면 난 깨끗이 설거지를 하고, 네로가 잇템을 선보이면 물개박수를 치며 리액션하며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간다. 그런데 나도 더 섬세하게 챙기려고 노력해야겠다. 우리집 고양이 네로가 집에서 편안하고 나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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