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집값과 얼렁뚱땅 생활비 정산
서울에서 자취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우리는 숨만 쉬어도 주거비가 나간다. 입고, 먹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어쩌면 당연한 말이려나. 물가 상승률은 매번 갱신하고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카드값 청구서와 함께 자취를 감춘다.
회사 근처 자주 가던 백반집은 9,000원이었는데,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11,000원으로 올랐다가, 지금은 13,000원이다. 5년 만에 40%가 넘게 올랐다. 라떼는~ 기본 김밥 1줄이 1,000원이었는데(참치김밥 1,500원) 이제는 기본 김밥도 4,000원이다. 카페는 또 어떻고. 커피와 베이커리 가격은 밥값과 맞먹는다.
한 번은 서울 근교 경치 좋은 카페에 갔는데 아메리카노가 9천 원, 라떼가 1만 원이었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일행을 데리고 줄행랑을 쳤다. 돈 잡아먹는 귀신아 물러가라! 아무리 커피 가격은 카페 공간을 누리기 위해 지불하는 가격이라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많이 너무해.
커피는 안 마시면 그만이지만, 이 몸을 누일 집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서울 집값은 미쳤다. 서울에서 좀 괜찮다 싶은 오피스텔이나 빌라에 전세 혹은 월세를 구하려고 해도 보증금이 억이다. 정말 헉소리가 나온다. 비싼 서울 집값에 기가 죽었지만 심기일전해서 보증금 3천만 원에 월세 120만 원을 최대치로 잡고 빌라 월세집을 알아봤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어이가 없다. 이런 집도 세를 놓는다고? 미친 거 아냐??? (서울에서 집 구하다가 좌절하고 분노한 이야기는 '이별의 5단계를 거쳐 서울 월세방 구하기 1편‘ 참고)
꺼진집(반지층), 언덕집(마을버스도 안 다니는데 언덕 꼭대기에 있음), 골목집(영화 범죄도시에 나올 거처럼 무서운 골목에 있음).. 서울에 구린 썩은 집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집에서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과 집이 주는 편안함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좌절과 희망, 분노와 간절함을 느끼며 마침내 지금 집에 입성하게 되었다! 우리가 최대로 잡은 보증금과 월세 금액을 꽉 채운 집이었지만, 보자마자 ‘이 집이다!' 싶어서 집을 본 당일에 바로 가계약금을 쐈다.
월세 120만 원에 각종 공과금과 관리비를 생각하면 하루에 4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월세가 아까워서라도 집에만 있어야겠다.) 혼자라면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100만 원이 넘는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텐데 친구와 둘이라서 가능했다.
동거를 시작하고 주거비, 관리비, 공과금은 동거인과 정확히 1/N을 하고 있다. 그럼 나머지 생활비는? 생활비에는 식비와 생활용품 구매비 등이 포함된다. 처음 이사하고 필요했던 물품(휴지, 샤워기 필터, 행거 등)은 동거인이 한꺼번에 쿠팡으로 주문했고, 내가 금액의 절반을 동거인 계좌로 입금했다. 앞으로도 생활비는 공평하게 반반하자고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활비 반반이 칼로 무 자르듯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문화 차이 중 하나가 '더치페이'이다. 우리나라도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해져서 음식값을 한 사람이 한꺼번에 계산하고 카카오페이 등으로 정산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더치페이의 편리함을 넘어서는 한국인의 정이 있다. 보통 “내가 살게~"하고 먼저 계산을 할라치면 다른 사람이 만류하다가 포기하고 "다음엔 내가 살게! 혹은 그럼 커피는 내가 살게~”라고 말하며 훈훈한 모습이 연출된다. 계산만 했을 뿐인데 암묵적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 일타쌍피! 역시 고스톱의 민족인가.
우리의 생활비 지출에도 이런 은근한 애정이 담겨있다. 요리를 잘하는 동거인이 장을 봐서 저녁을 차리면 나는 숟가락을 얹어서 같이 먹는다. 그런데 밥을 다 먹고도 장 보면서 지출한 금액에 대해 묻지 않는다. 대신에 맛있는 제철 과일을 사와서 같이 먹거나, 집안을 환하게 밝혀 줄 꽃다발을 사와 화병에 꽂아둔다. 때로는 요리하느라 고생하는 동거인을 위해 외식을 제안한다. 물론 그때의 외식비는 내가 부담한다. 꼭 돈이 아니어도 동거인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런 방법들을 떠올리며 동거인을 기쁘게 하려고 궁리하는 것도 동거의 묘미다.
공용으로 쓰는 생활용품은 구매 전에 상대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금액을 절반씩 부담한다. 그런데 다이소에서 구매한 소소한 생활용품 같은 경우에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따로 정산은 안 한다. 적고 보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우리의 생활비 지출 관리다.
이런 귀걸이, 코걸이 같은 방식에도 불만 없이 잘 지내는 이유는 서로에게 신세 지지 않고 잘하려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사는 게 아닌, 친한 친구랑 의기투합해서 살기로 했기 때문에 같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니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 고 서로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또, 같이 살다 보니 일부러 마음먹지 않아도 ‘내가 더 배려해야지~ 조금 손해 봐도 뭐 어때'라는 쿨한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친구랑 동거하면서 나의 됨됨이도 더 좋아지는 매직. 물론 이런 마음이 일방이 아닌 쌍방이라 우리의 여둘살이는 핑크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