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동거인 지구에게

새해 연하장을 띄우며

by 위기회

<박완서의 말>이란 책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해


내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


내가 지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와 살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나는 지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나의 그런 주접스러운 말들은 지구는 다 들어주고 좋아하니까 난 한 문장으로 편지를 마치지 않을래. 지구에게 새해 연하장을 보내며 내 마음을 온 사람들에게 알리고(아이러브지구), 잊혀져 가는 브런치 매거진을 살려야겠어. 매주 목요일 이 연재일이거든. 무려 일석삼조의 효과야. 예이~


지구야 우리가 함께 일 년 열두 달 중 사분의 일이란 시간을 한집에서 살았구나. 작년 여름, 훌쩍 지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만나서 밥을 먹다가 같이 살자는 내 꼬임에 넘어갔지. 장마철에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으며 여러 동네에 집을 보러 다녔어. 그땐 정말 우울해서 집 구하기를 포기하려 했을 때 운명처럼 이 집을 발견했어. 난 운명이란 표현은 좀 오버스러워서 잘 안 쓰려고 하는데 이 집을 만난 건 정말 운명이야! 그렇게 정말 같이 밥 먹다가 우린 함께 일상을 보내는 식구가 되었네.


요즘처럼 추운 날엔 밖에서 떨다가 집에 들어가면 정말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또 그 집에 반가운 지구가 있어서 감사해. 지난날 함께 살며 속상한 일이 있어서 엉엉 울어버릴 때는 같이 울어주기도, 웃긴 농담으로 어이없이 웃게 만드는 나의 동거인 지구. 우린 별 거 아닌 일에도 리얼가이즈처럼 총총(사실은 쿵쾅) 뛰며 함께 기뻐하지. 정말 지구와 살며 literally 기쁨은 두 배, 슬픔은 절반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어.



함께 살아보니 정리정돈도 잘하고, 자기 일에 묵묵히 책임감을 갖고 완수하는 지구를 보며 친구이지만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 지구가 완성한 석사 논문을 읽을 때는 그동안 밤새 애쓰며 고생했던 지구의 모습이 떠올라서 대견하고 기특하더라. 산고의 고통처럼 논문을 낳는 거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줄 걸 그랬네. 어서 세상에 지구의 논문을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서 가방끈 제일 긴 척척석사 우리 지구! 세상 사람들이 우리 지구 똑똑하고 야무진 거 다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 아빠 환갑축하 현수막처럼 ’우리 집 척척석사 지구 석사 논문 축하‘ 현수막 커튼을 달아야 할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 집 계약 기간은 줄어들고 있지. 지구랑 함께하는 이 시간이 유한한 시간임을 알아서 함께하는 시간에 더 자주 감사함을 느끼는 거 같아. 나와 살며 지구가 좋은 에너지와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어. 나는 지구에게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지 떠올리니 집 같은 친구가 되고 싶어. 우린 퇴근하고,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잖아. 특별한 건 없지만 그저 마음 편안한 집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지구에게.


25년은 올 한 해는 어떤 시간으로 채워갈까? 지구의 새로운 여정도 두 팔 벌려 응원할게. 아임 유얼 치어리더~예~ 지구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먹고, 일찍 자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좋겠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몸 건강을 지켜야 하니까. 나는 지구에게 말했듯이 영어공부도 하고, 다이어트도 할게. 인간관계에선 관대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싶어.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응원해 주자. 참, 지구의 양송이 크림 파스타 레시피도 배워야지. 배움으로 가득 찬 한 해를 보내야겠어. 유후~


요새 뉴스만 봐도 정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거 같아. 이상한 사람도 너무 많고. 그런데 우리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girl이 되자. 비취 걸~ 계엄령처럼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그저 온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또 매번 나의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변해줘서 고마워. 지구 앞에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내보일 수 있는 거 같아.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사라진달까. (창피함은 지구의 몫...크크)


지구야, 새해 복 많이 받아. 집 계약할 때 주인 할머니께서 이 집에 복이 많다고, 부자 돼서 나갈 거라고 했던 말 기억하니? 지구랑 함께 사는 그 자체가 나에게 복이고 행운이야.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 서로 의지하고 행복하게 살자. 마음먹은 것들은 하나씩 실행하며 우리가 꿈꾸는 모습에 다가가는 서로의 모습을 지켜보자. 지금보다 더 멋져질 지구라니 정말 기대됨....!



그럼 이만,

애정을 담아 위기회 드림

keyword
이전 20화익숙한 일상은 편하면서 권태롭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