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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거 아니고 행복이 찐 거에욧

위대한 동거생활

by 위기회

같이 살면서 나와 동거인 둘 다 살이 쪘다. 이건 살이 아니라고 행복이 찐 거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평소에 입던 옷이 꽉 낀다. 미쉐린처럼 허리와 허벅지가 두툼해졌다. 살이 찌면 추운 겨울에 좀 덜 추울까 싶었지만 똑같더라. 춥다.. 함께 맛있게 먹고 즐겼던 우리의 추억은 뚠뚠한 지방을 남겼다.


뭘 그렇게 맛있게 먹었나 생각해 보니 둘이서 참 잘도 해 먹었다. 우리집 흑백요리사, 백종원인 동거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면 얼마나 행복한지 몸소 경험하고 있다. 나의 포동포동 살찐 몸이 증명한다. 그치만 아는 맛이 무섭다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신나게, 기쁘게 먹었을 것 같다.


어제도 동거인이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했다며 유튜브 숏츠를 보여줬는데 조만간 그 요리를 식탁에서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된다. 이러니 집에 꿀 발라 놓은 사람처럼 퇴근하면 집으로 달려갈 수밖에. 퇴근길에도 집밥 먹을 생각에 즐거운 저는 삐빅 먹보입니다.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의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싸고 보글보글 김치찌개 끓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국자로 김치찌개를 뜨자 김치 반 돼지고기 반이다. 밥에 김치찌개를 올리고 조미김에 싸 먹으니 진짜 눈물 나게 맛있다. 정신없이 먹다가도 라면 사리 넣는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맞춘다. 김치찌개와 라면 사리의 조합처럼 나와 동거인은 환상의 궁합, 우리 동네 쩝쩝박사다.


얼큰한 김치찌개 말고도 감자를 뭉텅뭉텅 넣은 뜨끈한 카레도 둘이서 6인분을 먹었다. 2~3일 먹을 생각으로 6인분 고체 카레를 몽땅 넣었는데 하루 만에 다 먹었다. 이 날은 정말 배가 찢어질 거 같아서 밥 먹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끄응 차. 내가 잘 먹어서 좋다는 동거인의 칭찬은 고래가 아닌 내 입을 춤추게 만든다. 내 뱃살도 훌라훌라 훌라춤을 춘다.


우리의 위대한 동거생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면 후식이 또 그렇게 당긴다. 맵단짠의 법칙 아시나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운 거, 단거, 짠 거 순서로 뭐가 자꾸 당긴다. 줄다리기도 아닌데 자꾸 당긴다.


꼭 배가 불러도 호배기가 생각난다. 호배기는 우리 동네 꽈배기집 이름인데 호떡과 꽈배기를 합친 말로, 호떡처럼 둥그렇게 생겨서 찹쌀 꽈배기의 식감이다. 찰꽈배기, 팥호배 기, 꿀호배기 등 맛도 여러 가지다. 어느 날 동거인이 필라테스 끝나고 집 오는 길에 호배기를 사 왔는데 그럼 그날 밤은 축제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앗 뜨거! 하면서 먹는 그 맛이라니. 호배기랑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면 정말 천국의 맛. 유력한 나의 뱃살 용의자는 아무래도 호배기인 거 같다.


길 건너편에 있는 뜯어먹는 식빵 전문점, 역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찐빵과 만두집,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 침을 꼴딱 삼키지만, 매번 못 본 척하고 냉정하게 돌아서야 하는 곳들이다. 먹는 건 10초 컷인데 살 빼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역시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으니까 더 기쁘게, 자주, 많이 먹게 된다. 위대한 우리는 설 연휴에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둘 다 말이 없어졌다. (숙연) 구석에 처박아 둔 체중계를 거실 한가운데 두고 매일 아침마다 몸무게를 기록하기로 했다. 이제 내리막 없이 가파르게 올라가던 몸무게에서 이만 하산하렵니다. 우리의 이번 달 룸메 목표는 다이어트로 정했다. 앞으로 더 맛있게 먹을 날들을 위해 조금은 덜 먹기로 약속했다.


한 달에 1kg씩 빼면 일 년이면 12kg 뺄 수 있다는 무적의 논리로 무모한 목표도 세웠다. 이번 달은 다이어트 첫 달이니 1주일에 1kg씩 총 4kg을 빼기인데... 어이가 없지만 뭐 아좌아좌...요리도 잘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는 동거인과 함께 사는 건 정말 행복한데 자꾸 살이 쪄서 문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의 대사가 떠오른다.


침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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