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고독
혼자 보내는 주말 평소와 같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친구들의 블로그를 읽었다. 카페의 분위기와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핸드폰 카메라를 세워두고 브이로그처럼 내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제법 재밌네? 카페에서 집 가는 길엔 좋아하는 와인바도 영상으로 찍었다. 찍은 걸 모아보니 브이로그 감성 보다 '인간극장' 혹은 유튜브의 조상 버전인 UCC 같다. 그래도 뭐 찍으면서 재밌으면 됐지.
저녁을 차리고 밥 먹는 것도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밥 먹는 건 어색할 거 같았는데, 혼자 집에서 카메라 세워두고 먹는 거라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다 즉흥적으로 영상편집 어플(VLLO)을 켜서 하루 동안 찍은 영상을 컷 편집했다. 예전에 여행 영상을 짧게 만든 적이 있어서 그때 기억을 살려 대충 영상을 자르고, 자막을 쓰고, 배경음악을 넣었다. 멋들어지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보다 가볍게 해 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니 큰 노력 없이 대충~ 손쉽게 영상 한 편이 완성 됐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생각나는 대로 좋아하는 드라마 여자주인공 이름으로 지었다. 그 주인공의 유쾌하고 밝은 성격과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모든 과정이 그저 웃기고 재밌었다. 그렇게 나도 유튜브 채널이 생겼다! 소문난 잔치가 아니니 내가 소문을 내야지~ 친구들에게 영상 링크를 보냈더니 다들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제 하다 하다 유튜브 까지 하냐며 왜 이렇게 부지런하냐고, 추진력 뭐냐고 웃겨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정한 친구들은 댓글을 많이 달아줬고 칭찬에 약한 나는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난주부터 시작했는데 1일 1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직장인 광기가 따로 없다. 영상 길이는 3~6분 정도로 짧은 편이다. 내 추구미는 감성 브이로그인 반면 감성이 없는 사람인지라, 그저 날것 그대로의 영상에 자막으로 웃기려고 한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좋은 점은 자투리 시간도 알차게 보낸다는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튜브 편집에 집중하다가 내려야 하는 지하철 역을 그대로 지나칠 뻔했다.
유튜브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진데 하나는 그저 재밌어서(아직까지 영상 찍고 편집하는 게 재밌다.)이고 다른 하나는 혹시라도 내가 유튜브로 소소한 수익을 거둘 수도 있으니까 하는 기대감이다. 아직은 구독자 23명에 불과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고 나의 유튜브가 빵~터질지 어떻게 알겠어. 뭐든 해봐야 기대도 할 수 있지.
내 유튜브의 강점은 솔직함과 무해함으로 정했다. 그냥 편안하게 밥친구처럼 틀어놓고 볼 수 있는 영상이 되면 좋겠다. 주변에 흔히 있을 거 같은 친숙한 친구나 언니의 일상 느낌. 내 영상을 보면 아 사람 사는 거 다 별 거 없구나~ 다 똑같구나 하며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유튜브가 되고 싶다. 아직은 군중 속의 고독이지만. 어제 올린 영상의 조회수는 43회이다. 소소하다...
내 영상에 가장 열광하는 팬은 역시나 동거인이다. 동거인과 나는 솔로를 보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영상의 조회수가 가장 높다. 리액션 영상의 조회수는 225회 이고, 영상을 숏폼으로 올린 쇼츠는 524회다. 동거인과 함께 찍은 영상은 나도 편집하면서 너무 재밌었는데 우리의 티키타카가 돋보인다. 여자 출연자에게 편지를 쓰겠다며 여지를 주는 광수를 보고 동거인은 "엄마한테나 써!"라고 외치고, 데이트가 아슬아슬했다는 말에 내가 어이없어하며 "뭐가 아슬아슬 이냐" 하자 "네 명줄이" 라며 입에 칼을 문 리액션을 보여줬다.
같이 나는 솔로를 보고, 요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가 나눈 수다도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은 일상적인 우리의 하루도 먼 훗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거 같다. 내가 유튜브를 시작하자 동거인은 우리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하는 것을 좋게만 여겨주는 동거인에게 고마워 마음이 찡했다. 집에서 자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에 싫거나 불편할 수도 있는데 그저 즐겁게만 느껴주는 친구다.
유튜브를 찍으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나의 시력이다. 한번 빠지면 지독한 구석이 있어서 일주일 간 매일 편집을 했는데 눈이 나빠지는 기분이다. 구독자와 조회수는 늘지도 않는데 계속 앉아서 편집하며 안구건조증과 거북목만 생길까 봐 걱정이다. 요즘 영상을 편집하느라 평소보다도 늦게 잠들었더니 영 컨디션이 별로다. 정말 나도 못 말린다.
방금도 카페에서 브런치 글을 쓰는 장면도 영상으로 찍었다. 이번 주말엔 약속이 없어서 여유롭게 유튜브 편집 공장을 돌릴 수 있어서 신난다. 아무래도 과몰입 오타쿠의 초기 증상인 듯하다. 이렇게 혼자력이 더 상승하나! 영상 편집은 진짜 시간 도둑이다. 5분 정도 영상 편집하는데도 한 시간 반은 걸리는 거 같다.
하다 하다 브런치에 나의 자산 현황을 글로 쓰더니, 유튜브엔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양푼에 비빔밥을 맛있게 비벼 먹는 모습을 올린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허접하고 날 것 그대로의 영상이어도 유튜버라는 부캐가 생겼다! 유튜브 채널을 키워서 수익화하는 그날까지 힘 빼고 꾸준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