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떡볶이 잡솨봐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음식은 단연 떡볶이다. 새빨간 고추장 양념, 밀가루로 만든 떡볶이 떡과 어묵까지. 그야말로 탄수화물 폭탄이다.
어렸을 적 논술 학원에서 배운 삼단논법이 생각난다.
떡볶이는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맛있다. 떡볶이는 맛있다!
떡볶이는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살찐다. 떡볶이는 살찐다!
으악! 논리적으로 떡볶이는 맛있고 살찌는 음식이다.
직장인의 삶에서 다이어트 결심을 지켜가기엔, 떡볶이를 포기하기엔, 회사와 집을 오가는 삶이 너무 퍽퍽하다. 이 퍽퍽한 삶에 떡볶이조차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지? 이미 회사에서 인내를 너무 많이 해서 식탁에선 인내심이 사라진다. 그렇게 또 엽떡을 배달시키고..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둬야 떡볶이를 끊을 수 있겠는걸? 이건 다 회사 탓이다!
역시 모든 악의 근원은 회사다! 악귀를 쫓기 위해 떡볶이로 굿을 해야겠다. 빨간 맛을 맛봐라!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떡볶이를 먹으며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면?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하다면? 꿈이 아닙니다. 다이어트 떡볶이 레시피가 있다. 할렐루야! 삼단논법을 깨는 레시피다. 떡볶이는 맛있고 건강하다.
나와 동거인은 함께 살며 살이.. 아니 사랑이.. (정신 차려) 살이 쪘다. 둘 다 잡아먹히기 딱 좋게 포동포동해졌다. 잘 먹고 살이 쪄서 얼굴에 기름이 반질거린다. 물광이라 주장하고 싶어도 응 개기름~ 아무튼 건강하게 살이 쪘다. (먹는데 진심이었던 쩝쩝박사 일상글 참고)
밥 먹고 혈당 조절하자며 산책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천 원의 사랑인 꽈배기를 손에 들고 행복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파블로의 개처럼 밥을 다 먹고도 괜히 입이 심심하고 꽈배기가 그렇게 생각난다. 냉큼 꽈배기집으로 달려가고 꽈배기를 주문하며 양심상 설탕은 안 바른다.
그랬던 우리가 3월이 되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보통 나는 다이어트하면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동거인은 다르다. 오이참치덮밥, 두부김치덮밥 등 탄단지 구성이 좋은 다이어트 덮밥 요리들을 선보였다. 이렇게 건강하고 맛있다고? 차려진 식탁에 수저만 올리고 맛있게 먹었다.
매번 기대 이상으로 요리하는 동거인은 다이어트 떡볶이 레시피를 발견하더니 엽떡맛을 내는데 해냈다. 고추장은 저당 고추장으로 칼로리를 낮추고, 떡볶이 떡 대신에 단백질치즈를 라이스페이퍼로 감싸서 떡으로 만들었다. 라이스페이퍼 때문에 중국당면 같은 식감이다. 일반 밀가루 떡 보다 훨씬 맛있고 쫄깃하다. 어묵은 빼고 양배추를 썰어 넣었다. 단백질이 부족할까 봐 삶은 계란도 두 개 넣었다. 먹는 내내 맛있다, 미쳤다, 대박을 연이어 외쳤다. 배불리 먹은 뒤에도 더부룩함 없이 속이 편안했다.
요새 별별 다이어트 레시피가 다 있다. 밤마다 침대에 같이 누워서 유튜브 숏츠로 다이어트 요리를 검색해 보는 게 낙이다. 요리 잘하는 동거인은 “우와 다음엔 이거 해볼까?”라고 무심하게 묻는데 그 말에 심쿵한다. 다음 요리는 또띠아 토스트다. 우린 또 건강을 챙기니까 현미 또띠아. 얼마나 맛있을지 벌써 설렌다.
동거인이랑 집에 갇혀서 집밥 먹고, 홈카페 놀이 하고, 각자 할 거 하고 그렇게 삼시세끼 찍고 싶다. 동거인은 석사 졸업을 마치고 박사를 준비하려는데, 대학원이 훔친 요리천재다. 서촌에 밥집을 차렸으면 벌써 블루리본, 인스타 맛집 사장님이 되었을 터인데. 똑똑해서 가방 끈이 길다. 요리 잘하는 동거인 덕분에 나는 입이 길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귀신인양 식탁을 떠나지 못하고 걸신으로 빙의한다.
우리집 요리의 자랑은 건강한 재료이다. 먹는 걸 포기하느니 건강하게 저당, 쌀로 만든 재료를 이용한다. 세상이 좋아져 맛있게 먹으면서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이제 정말 다이어트를 못한다는 말은 핑계가 된 듯하다. 룸메의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늘 과식하게 되는 게 문제지만.
우리집 백종원, 우리집 안성재~ 요리 잘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인생에서 크나 큰 행복이다. 퇴근길이 즐겁다. 저녁 먹을 생각에 흐흐. 약속도 덜 잡게 된다. 집밥이 더 맛있으니까 크크. 이 글을 적으면서도 행복한 걸 보면 대단히 걸신에 들린 거 같다. 하루의 끝에 동거인과 마주 앉아 저녁 먹는 게 정말 일상의 큰 기쁨이다. 집에 꿀 발라 놓았냐의 꿀 같은 룸메랑 살고 있어요~
앞으로 설거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