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이조! 동고동락!
동거인과 함께 산지 곧 일주년이다. 일 년 전 이맘때에도 비가 많이 왔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말은 비 오는 날 이사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잘 살고 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이것이 바로 조상의 지혜? 살아보며 느끼는 점은 옛말이 꽤나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말들 빼고) 예를 들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같은 말처럼.
요즘 동거인의 취미는 말 그대로 구슬을 꿰는 일이다. 가내수공업으로 비즈 팔찌와 키링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나는 색깔별로 알록달록 비즈팔찌가 생겼다. 보는 사람마다 비즈팔찌가 예쁘다고 하면 나는 그 틈새를 노려 동거인 자랑을 펼친다. 팔불출이 따로 없다. 진지하게 이 비즈팔찌를 집 근처 플리마켓에서 팔아야 하나 1초 정도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생각이 짧은 편이라 또 금방 잊었다.
재미있으니까(혹시 나만?) 옛말을 계속 이어가면 우리의 동거 생활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다. 동거인이 작년부터 열심히 다니던 필라테스 센터에 덩달아 등록해서 그룹 수업을 받기도 하고, 동거인이 석사 졸업한 대학교도 산책하며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다니기도 했다. 논문 쓰랴, 학회 준비하랴 바빠서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내 동거인은 쩝쩝박사였다. 기쁘게도 동거인이 박사 학위도 준비하게 되어서 앞으로 동거인 따라 대학원 주변 맛집을 섭렵할 수 있겠다!
동거인은 나와 살며 우리 엄마의 솜씨 좋은 반찬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식탁에 올라간 우리 엄마의 반찬에 감탄하며 처음 먹어보는 식재료라는 말도 종종 한다. 우리 집 식탁에서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잇는 통합이 이루어진다. 통합하니까 생각났는데 같이 살면서 꽤나 시사 이슈에 대하여 서로 정보도 교류하고 토론도 많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부터 지금까지 계엄, 탄핵, 장미대선, 콘클라베까지.. 국내 정치는 물론 글로벌 종교까지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돌이켜 생각해도 "말도 안 돼!" 싶은 일들이 파란만장하게 벌어진 시간이었다. 덕분에 내 이상형에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는'이라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정치석 성향이 맞는다는 것은 어떤 사건을 보고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일 같다.
같이 살면서 N번째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둘 다 살은 빠지지 않았다. 대신 건강하게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더 건강해졌다. 특히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던 동거인의 안색이 나와 살며 밝아졌다. 요새는 출근 전에 똑똑똑 동거인의 방문을 두드리며 동거인을 깨우는 게 나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동거인이 바쁜 대학원 생활에도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우리 집 척척박사라고 불렀더니 정말 박사로 진학할 줄야. 김춘수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갑자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도 동거인한테 작가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해야겠다. 그럼 나도 브런치 글도 꾸준히 쓰고 정말 작가가 될 줄 어떻게 알아! (전자책이라도 허허)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데 그 말이 정말인 거 같다. 요새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 브런치를 잠시 놓았는데 마지막 발행한 글이 4월이라니. 3개월 동안 특별히 한 건 없는데 살짝 심심함을 즐기기도, 좋아하는 사람을 잔뜩 만나기도, 한껏 게으르게 보낸 거 같다. 쉬는 것도 노는 것도 잘했으니 이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글을 적는 유유자적 생활로 남은 여름을 보내보려고 한다.
1년 동거인과 살아보니 몰랐던 동거인의 반전 모습을 알았다거나,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여 싸웠다거나, 서로에게 엄청난 긍정적인 자극을 줘서 우리가 바뀌었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코골이 소리에 익숙해졌고, 고민이 있으면 침대에 누워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대단한 이벤트는 없지만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지난 일 년이다.
혹시 동거생활하며 좋은 점에 대한 정보성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짧게 적어보면 생활비가 절약된다. 절약 보다 1/2로 나눠내니 부담이 적다. 그래서 지금도 에어컨을 빵빵 틀고 있다. 또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둘이서 책을 돌려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거인이 재밌게 읽은 책은 대기번호 1번으로 다음에 빌려 읽을 수 있다. 또 책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토론도 할 수 있으니 방구석 독서모임이다. 언제 어디서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 동거생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남은 일 년 간의 동거생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은데 그 일 년 동안 또 우리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 보다 더욱 성장해 있기를, 또 살도 빠져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