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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Sep 06. 2024

똥차 가고 벤츠 오나 서울 월세방 구하기 2

소개팅도, 부동산도 급매물 최고!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 간 거야? 연애를 하려고 큰맘 먹고 주변에 소개팅을 부탁하니, 괜찮은 남자는 다 연애 중이거나 이미 결혼을 했단다. 그래도 원하는 조건을 말해보라길래 ”키 크고, 성격은 다정하고~“ 나름 최소한으로 말했는데 내 눈이 너무 높다고 한다. (아니 이건 기본 아냐?) 친구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만 우울해졌다. 그러다 간혹 소개팅이 들어와서 소개팅에 다녀오면 현타가 세게 온다. 이렇게 또 망한 소개팅 썰 추가요~


집을 구하면서도 이 지난한 과정을 똑같이 겪었다. 아니 소개팅은 만나서 밥이라도 먹지, 집 구할 땐 밥도 굶고 다녔는데 영 성과가 없었다. 여둘살이를 결심하고 조건에 맞는 매물을 열심히 보러 다녔는데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고, 체력과 마음이 모두 지쳐갔다. 부동산 사장님은 "투룸 매물은 워낙 귀해요. 더 괜찮은 집 구하려면 월세를 높이거나, 아니면 좀 눈을 낮춰서.." 앗, 이거 익숙하게 듣던 말이다. 소개팅 받으려면 눈을 좀 낮춰보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서 황급히 부동산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진짜 연애도, 집 구하기도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이별의 5단계 중 마지막인 우울과 수용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전 글에서 이별의 5단계 중 앞부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단계, 우울.

이제 내 신세를 탓하기 시작했다. 원룸에서 벗어나질 못할 운명인가. 아 언제까지 원룸에 살아야 하지? 이때 눈치 없이 '오늘의 집'에서 알람을 보낸다. 여둘살이를 할 기대감에 열심히 인테리어 소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는데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 헤어지고 핸드폰 앨범 속 전남친 사진을 정리하듯 장바구니에 있던 상품을 모두 삭제했다. 의식주의 '주'를 원하는 대로 하질 못하니, 술 '주'라도 마음껏 즐겼다. 친구들을 만나서 재밌게 놀아도 어쩐지 마음 한켠이 공허하고 통장 잔고는 가벼워졌다. 반면 몸무게는 계속 플러스 됐다. 기분이 더 우울하다..하.. (이거 맞아?)



미련 가득했던 우리


5단계, 수용.

여둘살이를 하기로 했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혹시 나 질척이는 거야?" 답장을 보내려는데 매물 링크가 왔다. 친구는 우리의 여둘살이에 미련이 남아서 그동안 새로 뜨는 매물들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미련의 긍정적 효과!) 친구의 말에 나도 다시 불타서 우울의 동굴에서 성큼 걸어 나와 열심히 매물들을 찾아봤다. 슬픔을 지나온 사람은 강해진다. 우리가 그랬다. 어느 정도 현실적 조건을 수용하기로 하고, 관대한 마음으로 다시 직방을 열심히 뒤졌다. 매물 너 뒤졌어.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올라온 급매물을 발견했다. 그것도 엄청 괜찮아 보이는 급매물! 오래된 주택이긴 하지만, 실내는 리모델링해서 깨끗해 보이고, 동네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아서 살기 좋아 보였다. 지하철역이랑도 가까운 편이고, 무려 평지다!! 친구가 바로 부동산에 연락해 다음날로 약속을 잡았다. 이번엔 좀 기대가 컸다. 사실 소개팅 시장에서도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급매물이 괜찮은 경우가 훨씬 많다. 오래된 매물은 다 하자가 이유가 있었다. 또, 내 눈에 괜찮으면 다른 사람 눈에도 괜찮아 보인다고 그런 급매물들은 언제 나타났었냐는 듯 금방 사라졌다.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 나는 일정이 있어서 친구가 혼자 다녀왔는데 집을 보고 온 친구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친구는 동네도 깨끗하고, 거실도 넓어서 둘이 살기 딱 좋을 거 같다며 그동안 본 중에 젤젤젤젤 괜찮은 매물이라고 했다. 친구가 보내준 영상과 사진만 봐도 정말 집 상태가 기대 이상이다. 친구가 나보다 훨씬 꼼꼼한 편이라 친구의 이런 반응이라면 완전 괜찮은 집이다!  느낌이 좋다! 바로 계약해야 하나 고민되는 와중에 오전에 집을 보고 간 사람이 있으니 이 집이 마음에 들면 바로 가계약금을 넣으라는 사장님 말씀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아 어떡하지, 난 아직 집을 못 봤는데.. 집도 안 보고 계약을 해도 되나.


잠시 후 가계약금을 덜컥 입금해 버렸다! 몰라 일단 저질러 버려. 용기 있는 자가 급매물을 얻는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여둘살이의 꿈을 이루기 어려울 거 같았다. (그건 너무 슬프잖아) 또, 우리가 그동안 본 중에 제일 괜찮은 집이라는 친구의 말을 믿었다. '집이 좀 별로여도 같이 재밌게 살면 되지'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모든 걱정을 밀어내 버렸다. 그렇게 급매물을 보고 온 지 두 시간 만에 우리의 여둘살이 집이 생겼다! 우리가 꿈꿔온 순간이었다. 드디어...!!


직업도, 남자친구 혹은 남편도, 집도.. 딱 하나! 나랑 잘 맞는 딱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그걸 찾는 과정이 참 어렵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으면 뭐라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깨달음이라도 얻겠지. 이번에 집 구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 여유 있는 태도로 길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배고프다고 뭐든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천천히, 억지로라도 느긋하게 마음먹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단 방향을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가보기. 그러면 또 그 상황에 맞춰 좋은 선택지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LA여행 중에 본 진짜 똥차...저래도 굴러는 가더라



이별의 5단계를 거쳐.. 마침내 똥차 가고 벤츠가 왔다.

아니 벤츠를 찾았다.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의지로!




(결론)

정말 부동산이든, 소개팅이든 매물은 계속 계속 봐야 하나 보다. 

그러다 급매물이 나타나면, 이것이 내 것이란 생각이 들면 용기 있게 잡아야 한다!

쟁 취 합 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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