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옛날 드라마 정주행하기

그사세, 김삼순, 시크릿가든..

by 위기회

겨울이 되면 귀차니즘 정도가 심해진다. 날이 춥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고 약속도 잘 안 잡게 된다. '이불 밖은 위험해!'를 신념으로 삼으며 퇴근하면 집으로 줄행랑을 치고, 주말에는 신발 안 신기 챌린지를 실천한다. 신발 안 신기 챌린지의 콜라보는 머리 안 감기. 배달 어플과 유튜브, 넷플릭스만 있으면 몇 날 며칠이고 집에서 놀고먹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 상상만 해도 제일 행복해.


나의 이런 귀차니즘은 이번 설날 연휴에 빛을 발휘했다. 어딜 나가려 해도 눈이 많이 온다는 핑계로, 이럴 때 나가면 눈길 위험하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씻지도 않고 고무줄 바지와 목 늘어난 티셔츠를 문신처럼 입은 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잘도 넙죽 받아먹고,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소파에 발라당 누웠다.


제일 편한 자세로 누워서 소화제인 귤을 까먹으며 나의 시선은 TV로 향한다. 지상파를 넘어 유튜브와 넷플릭스 컨텐츠도 TV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가혹하다. 돈도 안 들고 시간이 순삭 될 만큼 재미난 게 TV 말고 또 뭐가 있으랴. 아 나도 영상 컨텐츠 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독서쟁이라면 좋았겠지만 내 시선은 이미 바보상자에 빼앗겼다. (굳이 빼앗겼다고 쓴 이유는 자의식과 상관없이 정신 차리니 이미 티비를 보고 있는 나..)




이번 설 연휴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으로 시작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삼순이)과 함께 끝났다. 아 중간에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도 재밌게 봤다. 볼 게 많이서 지루할 틈 없는 설 연휴였다.


요즘 2000년대 드라마 보는 맛에 빠져있다. 2000년대 드라마에 언 듯 보이는 옛 서울의 풍경도 새롭고, Y2K를 연상시키는 패션과 폴더폰 감성에 스며들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은 지금보다 더 농밀하고 깊고 진한, 어쩐지 보다 보면 덩달아 아련해지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사세는 드라마를 만드는 방송국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숨 가쁘게 촬영하고 일분일초를 다투어 편집해서 방송을 내보내는 장면에선 내 마음도 조마조마하다. 이십 대 때 이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땐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나도 저런 어른들의 연애를 할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어른의 나이가 되어보니 말 그대로 나이만 먹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썸도, 연애도 여전히 어렵고, 오히려 예전보다 사랑을 향한 열정도 조금 식었다. 내 몸 편한 게 장땡이다.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도 당연히 재미있지만 그사세에서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렸을 땐 마냥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나의 시선에선 저렇게 날밤 새서 일하면 과로사라며 혀를 끌끌 찬다. 한편으론 일도, 사랑도 뜨겁게 하는 그들의 모습에 부러운 마음이 든다. 어딘가엔 저런 삶도 있겠지? 정말?


그사세를 다 보고 연이어 삼순이를 정주행 했다. 삼순이는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데 지금 봐도 정말 재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드라마가 방영한 지 20년도 지났고 삼순이가 이제는 나보다 동생이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빨라~


삼순이도 그사세의 주준영처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와 초콜릿을 만드는 파티쉐가 되는 게 꿈인 삼순이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옛날 드라마 특성상 막말하는 남주 앞에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후련하고 짜릿하다. 주변에 삼순이 같은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삼순이를 다 보고 시크릿 가든 1~2화를 보는 중이다. 시크릿가든에서 길라임이 스턴트우먼으로 몰입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김주원이 반하는 설정도 치인다. 드라마를 보다가 나의 취향도 알아차렸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 주인공의 서사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시련 속에서도 할 말은 하고 보는 그녀들의 성격도 참 통쾌하고 닮고 싶다.


멀리서 보면 당당하고 멋진 그녀들도 일과 사랑 앞에선 슬퍼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일명 삼순이 비빔밥이라고 불리는 양푼 비빔밥에 소주 조합처럼, 그녀들은 그녀들의 방식으로 슬픔을 떨쳐낸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어딘가 나도 기운이 차오르는 거 같다. 슬픈 일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지만 스스로를 다독이고, 슬픔과 함께 성장하는 그녀들을 응원하며 방구석 설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겨울 한 철 쉬었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열심히 씨를 뿌리고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나도 이제 기지개를 켜야겠다. 나의 드라마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니까. 이 드라마는 다시 보기도 멈춤 기능도 없다. 현재 진행형으로 실시간 방영되고 끝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나도 바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 나만의 이야기로 가득한 드라마의 한 장면들을 만들기 위해.


음력 1월 1일인, 설도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인 한 해의 시작이다. 달력도 벌써 2월로 넘어갔다. 결연한 마음으로 레디고~! 겨울왕국의 엘사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멋진 여성이었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멋진 여성들이 참 좋다. 나도 그래야지.


심심하실 때 삼순이 어록 추천드려요. 그중 하나 남겨요. 백수라고, 그게 내 잘못이야? 경제 죽인 놈들 다 나오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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