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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기회 Sep 09. 2024

이사하는 날 느낀 운동한 보람

여자라면 냉장고는 맨손으로 들지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여름이라 가뜩이나 더운데 좁은 집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자니 땀이 계속 난다. 분명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땐 아빠의 SUV 차에 짐을 다 실어도 충분했는데 지금은 차 한 대로는 택도 없다. 급히 숨고 어플*을 켜서 원룸 이사 견적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히 큰 짐은 없어서(원룸의 장점은 풀옵션!) 용달차 한 대만 부르면 됐다. 포장이사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내가 발품 팔아서 과일박스 모으고 직접 포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사비용 아껴서 맛있는 거 사 먹을 작정이다. (이사 날에 탕수육도 대자로 시켜야지) 이사 견적 중 가장 저렴한 '이삿짐을 실어서 운전만 해주는 서비스'를 선택했다.


*숨고 어플 후기를 간략히 적어보자면 이번에 에어컨 수리와 청소, 이사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숨고 어플에서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고 여러 곳에서 견적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견적서를 보며 가격 비교가 가능하고,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후기도 참고할 수 있어 업체를 고르기가 쉬웠다. 이사 서비스는 출발지/도착지, 이삿짐의 종류/수량, 포장이사 유무 등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가 원하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으니 가격 측면에서 합리적이었다. 또, 운이 좋게도 내가 만난 고수분들은 연세가 있으셨음에도 친절하시고(꼰대x), 실력도 좋으셨다. 또 이런 어플을 나이 드신 분들도 이용하시는 게 새로웠다.(나는 이번에 숨고 어플을 처음 써봤다) 숨은 고수가 아니라 진짜 고수를 만나 아주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매일 퇴근하고 조금씩 이삿짐을 싸면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작디작은 나의 8평 원룸에 이렇게나 많은 짐이 있었다니! 분명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 짜증 냈는데 옷만 몇 박스가 나왔다. 외투까지 합치니 옷이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고 양도 많았다. 또, 신발은 어찌나 다양한지. 구두, 샌들, 슬리퍼, 롱부츠, 어그, 운동화 등등.. 그동안 스스로 '나 정도면 미니멀라이프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미니멀라이프는 무슨. 이제라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자 과감히 버리기로 결정했다. 버려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은 옷, 신발, 책들과 안녕을 했다. 앞으로는 '새로 하나를 사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물건을 들여야겠다. 왜 어른들이 좋은 거 하나 사서 오래 쓰라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좋은 거 하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다, 또 저렴한 거에 눈이 돌아간다)


이사 전에 빵과 떡으로 에너지 섭취하기/ 용달차에 이삿짐을 싣고서 출발~


이사 당일에 임대인분을 만나서 전세금을 돌려받고, 각종 관리비와 공과금을 정산했다. 이제 돈 정리가 끝났으니, 용달차 오는 시간에 맞춰 이삿짐을 미리 1층으로 내려놓았다. 이후 용달차에 짐을 싣고, 여둘살이 집으로 떠났다. 그리고선 방금 한 일과 정확히 정반대로 이삿짐을 새집으로 올리고, 포장했던 짐을 다시 풀고 정리의 연속. 아침부터 이사를 했는데 꼬박 하루가 흘렀다. (물론 중간에 아낀 이사 비용으로 탕수육도 사 먹었다) 이사를 하면서 왜 다들 내집마련을 꿈꾸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이사는 너무너무 힘들고 지친 일이다. (포장이사 하면 좀 다른가요?) 가능한 이 집에 오래 살겠노라, 짐을 더 늘리지 않겠노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렇게 이사 끝~ 여둘살이 시작! 이면 참 좋았겠지만 우리는 말 그대로 여둘살이다. 며칠 뒤엔 동거인이 이사하는 날이다.






상대적으로 내가 덜소유라면 동거인은 풀소유다. 그리고 새집의 에어컨과 가스레인지를 제외한 가구와 가전은 동거인의 것을 같이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짐이 '옷, 가방, 신발, 에어프라이어, 이불' 정도라면, 동거인의 짐은 이것들에 냉장고, 세탁기, 식탁 등이 추가된다. (당연히 이게 다가 아니다)  작은 바람 같은 나의 이사가 지나니, 곧 그 자리에 태풍이 불어올 참이었다.


동거인과 나의 다른 성격은 이사를 준비하면서도 드러났다. 동거인은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이다. 여러 상황과 혹시 모를 변수까지 생각하여 계획을 세우는 편이라 그만큼 걱정도 많다. 이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여자 둘이 이사한다고 무시하면 어떡하지? 우리 둘이 냉장고를 옮길 수 있나? 우리끼리 이사 못하게 되면 급히 누굴 불러야 해?" 등 동거인의 불안함은 커져갔다. 그에 비해 단순하고 (생각 없이) 긍정적인 나는 "에이~ 왜 못해~ 이사할 때 용달차 아저씨랑 셋이서 하는 건데 충분하지. 셋이 들면 1/3이야~"라며 별 걱정이 없이 말했다. 이때 나의 이런 말들은 동거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한다(오히려 킹 받게 함).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삿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동거인과 나눈 카톡 대화ㅎㅎㅎ





친구의 이사 당일에 나는 회사에 반차를 쓰고 여둘살이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영락없이 불안이로 빙의한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이제 짐 뺐는데 벌써 땀범벅이야. 이사 가는 집이 계단이라 아저씨가 우리끼리 힘들 거 같대. 빨리 와줘.." 지친 기색이 역력한 친구의 카톡을 받고 마음이 급해져 여둘살이 집으로 달려갔다. 집 앞에 도착하니 용달차 한 대와 아아를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는 친구와 아저씨가 보였다. 방금 아저씨랑 친구가 식탁을 옮겼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이미 힘이 빠져 보이는 친구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 나의 힘을 보여줄 차례다. 가로로 누워있는 냉장고 한쪽 끝을 아저씨가 잡으시면 내가 나머지 한쪽 끝을 잡고 둘이 동시에 "하나, 둘, 셋!" 하고 들었다. 힘을 주니 그냥 들렸다.  냉장고를 든 채 아저씨가 앞장서 좁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내가 따라 들어가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른 뒤, 냉장고를 세워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가로로 눕혀서 집 안으로 옮겼다. 아저씨의 지시에 맞춰서 움직이니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냉장고를 시작으로 티비 서랍장 등 크고 무거운 짐을 하나씩 옮겼다. 아저씨랑 친구는 놀라운 얼굴을 하고선 내가 너무 힘을 잘 쓴다며 칭찬을 아낌없이 해줬다. 난 또 칭찬을 받으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오버해서 신나게 힘을 썼다. (아마 한껏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다 옮길게. 년 가만히 있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냉장고와 무거운 짐을 옮기며 나의 작고 소중한 근육이 뿌듯했다. 아, 내가 들던 바벨의 무게가 이렇게 뿌듯함으로 돌아오는구나!


대강 이사를 마치고, 벽지와 바닥도 청소하고(입주청소는 사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직접 다 했다) 오랜만에 몸을 써서 일했다. 평소 회사에서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직장인으로서 몸을 쓰며 일하니 그 자체로 재밌었다. 집이 정리되고 깨끗해지는 게 눈으로 보이자 더 신이 났다. 우리의 여둘살이 집을 우리의 손으로 하나씩 일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라면 이사와 청소는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었겠지만, 친구와 같이 하니 공동의 미션처럼 느껴졌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난이도는 어려워지지만 '한 판' 깨고 나면 성취감을 느끼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도 둘이 힘을 합치면 어려운 상황도 잘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거인이 광나게 닦은 부엌


둘이 합친 나이보다 더 오래된 주택에 살면서 그보다 더 깊은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다. 친구에게 마음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힘이 되는 든든한 동거인이 되기 위해 근력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우리들의 여둘살이를 위해 힘쓰는 건 자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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