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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직도 재택근무 가능한가요

by nay

연구라는 것도 종류와 분야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하는 것도 연구이고, 몸을 써서 이것저것 실물을 다루면서 실험을 하는 것도 연구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연구소라는 울타리 안에서 전혀 다른 활동이 일어난다. 연구원이라면 이럴 것이야, 라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예전 어떤 드라마가 생각났다. 생물 관련된 연구원이 직업인 사람이 실험실에서 쓰는 비커에 믹스커피를 맛있게 타먹는 장면이 나왔다. 작가나 PD 입장에서는 연구원스러운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 짐작한지만, 내가 아는 어떤 누구도 실험실 소모품이나 장비를 이용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특히나 회사니까 다양한 형태의 연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사람들의 무척이나 예민하다.

최근 이런 얘기를 들었다. 본사는 재택근무를 한다는데, 왜 같은 직원이면서 연구원들은 재택을 안하느냐는 불만이 있다고 한다. 응당 맞는 얘기이긴 하다. 실험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불안한 것은 다 같은 사람이니 이해가 된다. 연구원이라고 바이러스 감염이 덜 되는 것도 아니고 걸리더라도 쉽게 낫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구는 - 적어도 내가 속한 연구 분야는 - 몸과 머리를 동시에 써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세포를 다루는 실험이라도 한다고 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잠깐이라도 매일 나와야 한다. 세포의 상태를 확인해 가면서 실험을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납기에 맞추기 위해 몇 번의 실험으로 정확한 생산 조건을 맞추기 위한 스텝이 필요할 수 있다. 실험도 탄력을 받았을 때 몰아서 하면 좀 더 데이터를 얻기 좋은 까닭에 갑자기 중단하기 힘들 때도 있다. 누구나 다양한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험을 기본으로 하는 연구직은 재택근무라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그렇다고 늘 실험에 얽매여 있지는 않다. 어떨 때는 차분하게 공부만 하면서 머리 속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시간과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도 연구의 하나다. 이런 때라면 굳이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해야만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확산할 때 대화를 하면서 정리하기도 하고, 가만히 아무도 없는 도서관 같은 공간에서 번뜩이는 생각을 얻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이런 때는 꼭 정해진 사무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원격근무도 가능할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정부의 권고가 강력해졌다. 오피스에서 모여서 근무하지 말고 재택하면서 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며칠 재택근무를 해보니 장단점이 확 느껴진다.

-출퇴근에 소비되는 시간이 필요 없으니 여유가 생겼다. 침대에서 좀 더 뒹굴거려도 괜찮다.
-사람 사이에 생기는 interaction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사무실의 공기 (분위기)가 업무 집중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어떤 감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면 괜히 불편한 적이 있지 않은가. 집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출근해서는 괜히 딴짓을 해도 회사에 있다는 이유로 '난 근무하고 있으니까'라는 면죄부를 스스로 준다. 집에서는 업무에서 비는 시간에 뭘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오히려 업무가 아닌 다른 것을 하면 안될 것 같다 (첨엔 그랬는데 갈수록 느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일하는 공간과 개인적 공간이 혼재되니 어딘가 어정쩡하다.

-재택을 한다면 회사를 나갈 때보다 더 확실한 업무 루틴을 만들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은 좋은 점이라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재택으로 전환하면 생각보다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와서 다시 해보는 생각. 같이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특히나 연구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은 없는가. 코로나 이후에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란 전망에 동의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바뀌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 새로운 접근법과 기술을 이용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반드시 올 것이다. 정작 기술의 첨단에 있다는 연구소는 달라질 방향이 무엇일까. 전통적인 실험의 기술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직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보다 데이터에 기반해서 실험 디자인은 정교해질 것이다. 직접 실험을 하지 않고 기존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예측을 해본 후, 그것을 검증하는 실험도 가능할 수 있다. 아예 데이터 마이닝, 텍스트 마이닝으로 실험(?)을 하는 새로운 연구접근도 점차 자리 잡을 수 있다.

사실 더 두려운 것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자동화나 데이터 중심의 연구방법론이 자리를 잡으며 절대적인 연구원의 숫자가 줄어들 수 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의 일자리는 더더욱 좁아지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어쨋든 이 사태가 새로운 질문을 던진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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