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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나를 키운다

살며 사랑하며

by nay

'예준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무슨 일 있어?'

요즘 와이프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사실 작년 말,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상당히 날이 서있었던 모양이다. 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이를 대할 때 감정을 많이 드러냈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아이와 부딪히고, 나한테 하는 행동들에 실망하고 감정소모도 많이 했다. 가장 심했던 때는 연말 휴가로 인해 혼자 집에 있을 때였다. 회사를 안가니 몸이 쉬기는 하는데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안좋아졌다. 당시 나의 상황은 와이프가 심각하게 '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바닥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회사에서의 안좋은 부분을 가정에서 보상 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보니 아이의 장난이나 귀찮게 함을 못견뎠던 것이다. 내가 힘든데, 너는 왜 그걸 모르고 날 더 괴롭히는거니? 이런 마음.


어느 순간이었다고 특정 지을 수 없는데, 갑자기 마음이 다시 편안해 지고 아이에게도 예전보다 많이 나긋나긋 해졌다. 그 즈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아직 성숙하지 못했을 뿐, 이 아이도 하나의 인간이고 인격체라고. 그리고 그 동안 부모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그리고 가장 놀랍게 달라진 점은 사실 내 태도의 변화로 인해, 나에 대한 아이의 피드백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빽빽 소리를 지르고 대들지도 않고 나만 보면 화났냐고 묻지도 않는다. 물론 한 살 더 먹으면서 자라 난 아이의 마음 크기도 한 몫 더해졌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를 낳을 즈음 EBS에서 방영한 ‘마더쇼크’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모성애는 자동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마치 아이를 출산하는 순간, 없던 모성애가 엄청나게 생기는 것 처럼 묘사한다 (아이를 낳고 얼굴에는 한껏 미소를 담은 채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받아드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렇지 못한 엄마는 자격이 없는 것처럼 몰아간다. 실제로 내 아내가 겪었던 고충 중에 하나다. 출산 이후 회복이 잘 되지 않아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 상황에서 ‘모성애의 강요’를 받고, 다 참아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적 폭력은 아닌지? 모성애만을 다루었지만 부성애 역시 비슷하리라 본다. 나 같은 경우엔 아이와 의사소통이 시작되면서 부터 아이가 부쩍 더 사랑스럽게 보였던 것 같다.

사실 출산 이후에 제일 크게 느꼈던 점은 육아와 관련된 모든 사전 교육과 관심이 ‘출산 상황’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키우면서 보니 태어난 이후가 훨씬 더 현실적으로 겪어야 할, 그리고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였다. 첫째는 어떻게 크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이제 일곱살이 된 아이를 보며 몇 년 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아직 채 받아들이지도 못할 나이에 훈육을 하고 -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의 영향일지도 - 그것도 잘못된 방법과 방향에서.


정답은 없다. 아이와 지금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가끔 부딪히고, 울고, 떼쓰고, 또 달래주고, 나도 아이도 엄마도 가끔씩 상처 받는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키워가고 케어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 할수록 알랭 드 보통의 ‘한 남자’에 있는 문장을 자꾸 되내이게 된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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