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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코로나 시국의 편지란.

by nay

아내의 친구가 영국에서 엽서를 보내왔다. 싱가포르에서 알고 지낸 중국인인데 얼마 전 영국으로 이사를 했다는 모양이다. 이 시국에도 국제 이사를 하는구나. 짧은 내용이지만 엽서 한 장이 주는 즐거움은 그 이상이다. 잘 받았다는 표시로 사진을 찍어 올리려는 아내 옆에서 갑자기 아이가 이런다.


"이거 영국에서 온 거면 격리해야 하는 거 아냐?"

(아마 방역을 했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아, 이런.

설마. 국제 우편은 잘 소독되어서 배달하는 것이겠지.


문제의 그 엽서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로 시작하는 편지가 있다. 음, 이것도 영국이네?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한 때 아이들을 겁먹게 만든 그것, 이름하여 행운의 편지. 국민학생 시절에 단독 주택에 살았었다. 하루는 대문 앞에 편지가 떨어져 있길래 주웠는데 아뿔싸 나에게도 행운이 덜컥 찾아올 줄이야. 잘 아시는 내용처럼, 행운의 편지가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자기 복제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져야 한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행운은커녕 불행만 가져올 뿐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7명의 사람에게 동일한 편지를 써서 돌리지 않으면 어떤 알 수 없는 나쁜 일을 당할 것임은 분명했다.

어쩌지, 어린 나이의 나는 꽤 긴 시간 고민을 한 듯 싶다. 전전긍긍하다가 낸 해결책은 그냥 남의 집에 몰래 가져다 놓는 것이었다. 겁도 많고 대담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어쩌면 7장의 편지를 열심히 자필로 복사했을 것 같은데,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그 편지를 남에게 전가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의외다. 하지만 그렇게 처리해 버리고는 며칠 동안 혹여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계속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한 편으로 이제야 돌이켜보면 우리 집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두고 갔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다. 그는 정말 행운의 편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불행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둘 다 일수도 있고, 어쩌면 모든 것이 거짓인 것을 알고 한 번 당해봐라 하는 장난을 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911 테러가 있던 2001년에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했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다들 많이 놀라고 특히 직후에 아랍인들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 반목이 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실험실에도 아랍계 미국인이 있었는데 한동안 그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하루는 실험실에 있는데 갑자기 교수가 한 팔을 쭉 뻗고 엄지와 검지로 겨우 잡은 누런색 봉투를 하나 들고 급히 들어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 보낸 우편물이란다. 혹시 편지 안에 이상한 독성 물질이 들어 있지나 않은지 지레 겁먹은 모양이었다. 테러를 당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 싶지만, 911 당시를 생각해 보면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오버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나름 Toxicology 전공 교수라 더 그랬을까 이해해 보기로 한다.

실험실에는 후드라는 장비가 있다. 압력이 걸려서 배기관을 따라 공기가 빨려 들어간다. 고깃집에 있는 후드를 생각하면 쉽겠다. 처음에 살짝 흔들어도 보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마침내 조심스레 그 안에서 우편물을 열었다. 혹시 이상한(?) 물질이 들어 있다 해도 후드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안전하니까 말이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잔뜩 겁먹었던 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편지보다 이메일이나 문자, 아니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소통을 한다. 편지는 도저히 현대 사회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그래도 편지라는 매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편지는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 우리 곁에 있던 소통의 수단이다. 편지를 쓰면 보내는 사람은 마음을 전해 즐겁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내려 가는 즐거움이 있다. 받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누군가 공들여 쓴 선물과도 같기에 행복해진다. 자판으로 썼다 지웠다 쉽게할 수 있는 이메일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이 담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누군가를 겁먹게 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에 멀리 타국에서 온 편지에 반가움만 갖기 어렵다는 현실이 자못 슬프다. 아무 걱정과 염려 없이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그런 편지를 주고받는 날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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